국산 장어 가죽으로 만든 이탈리아 펜디의 '페퀸' 가방.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Fendi)에는 올 들어 전 세계에서 '매진 사례'를 기록한 제품이 있다. 빨간색·파란색 줄무늬 가죽 가방으로 300만원대의 고급 제품이다.

이 가방에 쓰인 소재는 장어가죽이다. 가방이나 의류에 장어 가죽이 쓰인 예는 매우 드물다. 왜 펜디는 새로운 시도를 했을까. 펜디 관계자는 "이색적인 가죽을 찾다가 장어가죽이 보통 가죽보다 색감이 잘 표현되는 데다 가볍고 부드러워 선택했다"고 말했다.

명품 속에 숨은 '명품 가죽'. 산지(産地)가 어디일까. 한국이다. 한국산 장어가죽으로 그 가방을 만들었다. 펜디만이 아니라 이탈리아 브랜드 돌체&가바나가 여러 차례 선보인 가죽 원피스와 가방에도 한국산 장어가죽이 쓰였다. 세계적 명품 업체들이 한국산 장어가죽의 품질을 인정한 것이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도 한국산 장어가죽 쓴다

현재 국내에서 장어가죽 원단을 생산하는 곳으로 이름이 알려진 곳은 '일안사'와 '공성물산', 단 두 군데다. 1970~1980년대엔 '수출 효자 상품'으로 불리며 가공 업체가 많았지만 인건비와 재료비가 크게 오르면서 대부분 손을 뗐다.

일안사는 30년 이상 장어가죽 원단을 생산해왔다. 국산 장어가죽 원단의 70% 정도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펜디 가방에 들어가는 장어가죽도 여기서 수출한 원단이 현지 도매상을 통해 납품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광명시 광명테크노파크에 있는 일안사의 아파트형 공장 안으로 들어가니 양초 녹인 듯한 냄새가 가득했다. 82㎡(24평) 정도 되는 작업장에서 직원 2명이 가공된 원단에 윤기를 내기 위해 왁스 칠을 하고 있었다. 출입구 오른쪽엔 빨강·파랑·노랑·검정 등 색색의 장어 원단 수백장이 마치 빨래처럼 널려 있었다.

원단 제조에 쓰이는 것은 먹장어 가죽이다. 폭이 좁은 장어가죽을 100장 정도 일일이 이어 붙여 3㎡ 크기의 원단으로 가공한다. 장어가죽은 얇고 찢어지기 쉬워 섬세한 손기술이 필요하다. 가죽이 마르면 꼬불꼬불거리는데 이를 판판하게 펼치는 것도 경력 3~4년이 돼야 제대로 할 수 있다.

일안사 이창우 사장(맨 왼쪽)과 직원들이 펜디, 돌체&가바나 등 명품 브랜드에 납품하는 장어 가죽 원단을 들어보이고 있다.

일안사에서는 10년 이상 경력의 가죽 장인 20여명이 원단 가공 작업을 전담한다. 표면에 균일하게 광을 내놓으면 반질반질해 비닐로 착각할 정도였다. 일안사 이창우 대표는 "남미나 중국 공장에서는 불량률이 50%까지 올라가는데, 우리는 이를 10%대로 줄인 게 성공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10만원짜리 원단에 명품 브랜드 달면 300만원으로 뛰어

장어 100마리로 만든 3㎡짜리 원단 가격은 10만원. 비슷한 크기의 소가죽보다 2배 이상 비싸다. 일안사 이창우 대표는 "소가죽보다 1.5배 정도 질기고 풍부한 색상 연출이 가능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는다"고 말했다. 일안사는 이탈리아 명품 업체에 납품하는 유명 도매상들과 꾸준히 거래하면서 연간 20억~3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원단이 비싸다지만, 유명 브랜드의 이름을 달면 그 가치는 수백만원으로 껑충 뛴다. 그만큼 브랜드 가치가 높은 것이다. 펜디 관계자는 "내구성을 높이고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제품 하나당 수십장의 장어 가죽을 사용한다"며 "디자인과 브랜드 가치 등에서 차별화 요소는 상당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원단 생산에 만족하지 않고 부가가치가 높은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 공성물산도 과거 원단 생산 위주에서 최근 완제품 생산 위주로 방향을 틀었다. 공성물산의 한도인 대표는 "미국 등 해외에서 부츠·지갑 등 완제품을 원하는 곳이 많다"며 "완제품 수출 물량이 매년 20% 정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장어가죽으로 잡화를 만드는 5~6개 신생 업체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