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구학서(오른쪽) 회장이 지난 1992년 자신의 고려대 국제대학원 졸업식에 부인 양명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모습.

신세계 구학서(65) 회장의 부인 양명숙(62)씨가 27일 우면산 산사태로 숨졌다. 양씨는 서울 서초구 우면동 형촌마을 자택에서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아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갔다가 변을 당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서초소방서 관계자는 "양씨가 지하실을 살펴보던 중 자택 뒤쪽 계곡에서 불어난 물이 갑자기 지하실로 쏟아져 들어와 그 안에서 익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씨의 아들은 당시 1층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학서 회장이 1972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신세계 회장직에 오르기까지 '샐러리맨 신화'를 일군 데는 양씨의 든든한 내조를 빼놓을 수 없다고 신세계 직원들은 입을 모았다. 공사 구분이 확실한 구 회장의 경영 마인드 때문에 직원들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양씨였지만 검소하고 소탈한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의 모습이었다고 직원들은 전했다. 구 회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부인의 어떤 점이 제일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돈을 쓸 줄 모르는 점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세계 구학서 회장 자택 지하 차고문이 불어난 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심하게 훼손된 모습.

양씨는 대외적인 활동이 적었지만 각종 봉사 활동엔 적극적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사회사업을 전공해 태화관이나 밀알학교 같은 자선단체에서 장애인을 위한 봉사 활동을 했고, 최근까지도 정기적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 활동에 나섰다. 신세계 관계자는 "장애인 복지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면서 "기부를 상당히 많이 하는데도 밖에 알리려 하지 않는 숨은 기부자"라고 말했다.

구학서 회장이 1999년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 직원들이 중소 협력업체들의 접대를 받지 않고 각자 계산하게 하는 '신세계 페이(pay)'와 개인 기부 운동 '희망 배달 캠페인'을 시작한 것도 이 부부의 평소 생활이 많이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구 회장 부부는 재계에선 소문난 잉꼬부부이다. 음악회나 기업 모임에서 양씨는 항상 구 회장 곁을 지켰으며 구 회장은 평소에도 "중년 이후에는 단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둘은 구 회장이 첫 직장인 삼성전자에 취직한 뒤 연애결혼했다. 구 회장은 고 양씨와 장녀 윤회, 장남 문회, 차남 열회 등 2남 1녀를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