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3일. 정부는 연초부터 치솟는 물가에 불안을 느끼며 긴급 대책을 내놓았다. 이날 정부는 서민물가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으며 “물가안정이 상반기 정책의 최우선 과제”라고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물가 상승의 원인을 구제역으로 인한 돼지고기 등 축산물 가격 상승과 한파로 인한 농수산물 공급 하락, 국제유가 상승 등 공급 측면에서 찾았다. 그리고 이를 타계하기 위한 방법으로 할당관세 적용품목 확대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1년 7월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 물가안정대책회의에서 물가급등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석유와 이동통신 등 독과점 산업에 대한 가격안정 태스크포스(TF)를 직접 꾸렸다. 정유사와 이동통신 회사 등에게 가격인하 방안을 내놓으라고 직간접적으로 압박을 넣기 시작했다. 실제로 정유사들은 정부측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 4월 6일부터 이달 6일까지 리터 당 100원씩 휘발유 가격을 인하했다. 통신사들도 기본요금을 1000원 깎는 등 정부 요구에 화답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가공식품 등 서민생활 필수 품목에 대한 가격 인상 담합 단속을 강화하는 등 물가잡기에 앞장섰다. 공정위의 강력한 담합조사 드라이브에 가공식품업체들은 우유와 캔커피 등 일부 품목의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가 취소하는 일마저 벌어졌다.

그러나 정부의 각종 물가 안정정책에도 불구하고 올해 들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단 한번도 4%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있다.

◆ 공급 확대 정책, 소비자 물가 안정에는 큰 효과 없어

정부가 상반기 중 가장 역점을 둔 것은 할당관세 적용을 통한 수입 농축산물 공급 확대였다. 구제역과 배추 파동 등으로 농축산물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수입을 통한 공급 확대는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카드였다.

먼저 정부는 공급가격 안정을 위해 수 차례에 걸쳐 할당관세를 적용, 현재까지 111개 품목에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구제역으로 인한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 돼지고기(25%), 크림치즈(36%), 분유(40%) 등의 관세를 0%로 내렸다.

이같은 공급확대책은 일정 부분 효과를 내고 있다.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 상승률(전월비)은 최근 2개월 동안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다. 전년 동월대비 수입물가 상승률은 지난 3월 19.6%까지 올랐지만, 지난달에는 10.5%로 3개월만에 절반 가까이 줄었다. 공장도 가격을 기초로 산출하는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3월 7.3%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하향세를 보이며 현재 6.2%를 기록하고 있다. 공급 측면에 주력하고 있는 정부의 물가 정책이 어느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생산자물가와 수입물가가 부분적으로 안정되고는 있지만, 소비자물가에는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배추와 무 등 채소류 가격이 3월 이후 안정세를 보이며 전월비 상승률이 0%를 기록하는 등 안정흐름을 나타내다 지난달 전월비 0.2%, 전년비 4.4%까지 오르며 재차 불안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공급 측면의 물가안정 대책이 소비자물가를 진정시키는 데에는 별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정부가 시행중인 주요 할당관세 품목 10개

◆ 가격인하 기간 끝난 뒤 사상최고치 위협하는 석유값

석유가격과 통신비 인하 등 기업들을 압박해서 가격을 인하한 것도 체감 물가를 끌어내리는 데에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오히려 석유가격의 경우 가격인하 기간이 끝난 뒤 가격 오름폭이 더 커지고 있다. 21일 유가정보를 알려주는 오피넷에 따르면, 서울지역의 평균 보통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24.99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인 지난 2008년 7월 13일의 2027.8원에 불과 3원 밑도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온 것이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정부는 가격인하 기간 중 약속했던 리터당 100원의 인하폭을 지키지 않았던 정유사와 주요소들이 가격 환원을 이유로 과도하게 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15일 “석유값 인하 기간 중 실제 가격인하 효과는 56원에 그친 것으로 분석됐다”면서 “정유사들이 기름값 할인을 되돌린다는 이유로 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가격인하 압력이 시장을 왜곡시킨 결과로 평가하고 있다. 강종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가격을 통제하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물가 왜곡을 가져와 물가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 MB물가지수 실패 뒤에도 '신(新) MB물가지수' 만드는 정부

정부가 최근 밀어부치고 있는 음식점 등의 외식비 인상 억제책도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다.

물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들

정부는 외식비 가격 인상을 이끄는 업소에 대해 가격 점검을 하고 가격 인하를 유도해 나갈 방침이다. 소비자단체가 주축이 돼서 7월 중에 설렁탕·삼겹살 등 6개 외식품목에 대해 서울 등 7대 광역시 500개 대형 업소를 중심으로 가격 조사를 실시하고, 8월부터는 대상 업소를 2000개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각 음식점별 가격 정보를 공개해 인플레 분위기에 편승한 업체를 골라내고, 소비자들에게 이를 알리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대책이다.

이밖에 정부는 지하철과 시내버스 요금, 짜장면ㆍ돼지고기ㆍ쇠고기ㆍ배추 등에 대한 가격비교표를 만들어 매달 공개하는 이른바 '신(新) MB 10대 물가지수' 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개별 품목의 가격 정보를 공개해 업체를 압박하는 방안은 MB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나왔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2008년 3월 52개 서민생활 밀접 품목을 지정해 가격 동향을 중점 관리하겠다고 했으나, MB지수 물가상승률이 전체 소비자 물가상승률보다 더 높아지는 등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개별 기업이나 업체를 윽박지르는 식의 물가 관리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강종구 연구원은 “시장의 논리대로 가격이 오르도록 하면 그만큼 공급량은 늘고 수요는 줄어 물가가 떨어질 수 있다”며 “미시적인 정책보다는 앞으로 물가 불안이 오지 않도록 유통구조 개선과 같은 거시적인 시장효율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