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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경기도 부천시 H주유소에 한국석유관리원의 검사팀원들이 들이닥쳤다. H주유소는 석유관리원 직원들이 열흘 전쯤 석유 품질검사를 나갔을 때 가짜 석유를 파는 곳으로 의심돼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주유소. 석유관리원 검사팀 이승헌 과장은 "당시 주유소 직원들의 행동이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직감하고 일주일 넘게 관찰해왔다"고 말했다. 휘발유 가격이 주변 주유소보다 리터(L)당 60~70원씩이나 싸다는 점도 의심스러웠다.

검사팀은 3시간여 만에 주유기 내부에서 이상한 전선 한 가닥을 발견했다. 전선을 따라 가니 주유기 안쪽 귀퉁이에 가로·세로 4㎝ 크기의 전자 장치 2개가 발견됐다. 주유량을 원격 조정할 수 있는 리모컨 수신기였다. 직원이 사무실에서 리모컨을 누르면 단계에 따라 1~6%까지 기름이 적게 주입되도록 만든 장치였다. 하지만 주유기 리터기에 표시되는 주입량은 정상으로 작동돼 운전자들은 속을 수밖에 없었다.

이승헌 과장은 "H주유소는 평균 3% 정도(한 번에 60L를 주유한다고 가정할 경우 1.8L) 기름양을 속여왔는데, 이는 매일 운전하는 사람들조차도 교통상황에 따라 주유량 대비 주행거리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양이어서 소비자들은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고유가 탓에 기름양을 속여 파는 것뿐만 아니라 가짜 기름 판매도 활개를 치고 있다. 판매 수법도 갈수록 첨단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리모컨을 이용하는 수법이다. 주유기 안에 수신 장치를 숨겨 놓고 직원이 사무실에서 리모컨으로 진짜 석유와 가짜 석유 배관 밸브를 조작해 운전자를 속이는 방식이다. 석유관리원은 가짜 석유 단속 때 주유소에서 리모컨을 사용하는지 여부를 체크할 수 있도록 전파감지기까지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밸브 조작 리모컨을 자동차 열쇠로 위장하거나 전자계산기 속에 숨겨두는 경우도 있어 실제 단속은 쉽지 않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주차요금 자동 징수를 위한 차량번호판 자동인식 프로그램을 설치해 단속반으로 의심되는 차량이 들어오면 알람이 울리도록 했다.

강력한 단속에도 가짜 석유 판매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세금 때문이다. 주유소는 가짜 휘발유를 팔면 L당 900원이 넘는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L당 700~800원 정도 챙길 수 있다. 정상적으로 기름을 팔았을 때 임대료·인건비·카드 수수료 등을 빼면 L당 20~30원 정도 남는 것과 비교하면 30배 정도 더 이익이 나는 셈이다. 성남 중원경찰서의 가짜 석유단속반 관계자는 "가짜 석유를 1년만 팔면 20억~30억원을 챙길 수 있어 주유소 업주들에게 가짜 휘발유는 마약과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