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말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휴가 시즌을 앞두고 대다수 직장인들이 기대에 들떠 있지만 삼성그룹 계열사에 근무하는 L모 차장은 휴가 때문에 고민이다.

L 차장은 최근 몇년 동안 아이들의 다양한 경험을 위해 가족들과 해외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하지만 올해는 아직까지 휴가지는 커녕 몇일이나 휴가를 써야할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기대에 부풀어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휴가를 다녀와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회사 분위기를 생각하면 해외로 휴가를 가기 위해 자리를 오래 비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이 여름 휴가를 계획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L 차장이 소속된 회사의 사장도 휴가를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사장이 휴가를 가지 않을 경우 당연히 핵심임원들도 회사에 출근할 가능성이 크고 이들을 보좌하는 임무를 맡은 중간간부급의 L 차장도 눈치 때문에 '나몰라라' 해외로 떠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비록 7월 마지막째 주와 8월 첫째 주 휴가 성수기를 고려해 매주 수요일 개최되던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가 2주간 열리지 않지만 사실상 그룹에서 '위기경영'에 돌입한 상태라서 고위 임원을 비롯해 핵심 부서의 간부들은 휴가를 핑게로 자리를 비우기가 녹록치 않다.

대내외적으로도 삼성그룹이 위기경영에 돌입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룹을 대표하는 삼성전자가 실적악화를 이유로 예정에 없던 7월 인사를 단행, LCD사업부문장(사장)은 물론이고 부사장들까지 교체하자 계열사의 모든 임원들이 비상이 걸린 것. 또 노조 설립, 제품의 품질 불량 및 이에 따른 리콜과 안티 고객 증가 등의 악재가 잇따르면서 그룹 분위기가 폭풍전야에 가깝다. 대다수 임원들은 휴가보다 추가 인사가 없는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직원들이 재충전을 제대로 해야 창의성이 높아지고 기업의 생산성도 좋아진다는 이 회장의 지시로 임직원들에게 장기휴가를 장려하던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이다.

특히 L 차장 처럼 승진 대상자인 중간간부들의 임원 눈치보기가 심해지고 있다. 임원들이 비상 대기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승진을 앞둔 중간 간부가 오랜기간 자리를 비웠다가 임원들의 눈밖에 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L 차장은 "아무래도 올해는 국내로 짧게 휴가를 다녀오자고 아이들을 설득해야 할 것 같다"며 "임원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생산직이나 평직원의 경우 눈치를 덜보고 휴가를 써도 되겠지만 중간 간부들은 휴가를 마음대로 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