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메모리반도체 전쟁'이 불붙었다. 메모리반도체는 PC에 주로 쓰이는 D램과 휴대전화·디지털카메라용 플래시메모리 같은 저장장치를 말한다. 2015년 세계 시장 규모가 815억달러(약 86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주력 수출 제품이기도 하다.
전자회사들은 제품 크기를 소형화하면서도 더 많은 기능을 집어넣을 수 있는 반도체를 원한다.
이런 요구에 따라 반도체 메이커들은 처리 속도, 전력 소모, 내구성 등이 기존 반도체보다 훨씬 뛰어난 차세대 메모리반도체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쏟아지는 차세대 반도체
그동안 삼성전자·하이닉스 등 주요 메이커들은 가능한 한 작은 크기의 반도체에 많은 정보를 저장하기 위한 경쟁을 벌여 왔다. 이런 방식은 이제 기술적 한계에 부딪혔다. 반도체 회로를 구성하는 전선 간격(선폭)이 10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에 근접하면서 더 이상 집적도를 높이기 어려워진 것이다.
기존 메모리반도체의 공정 한계는 예전부터 지적돼 왔다. 선폭이 극도로 줄어들면 반도체 회로의 전류가 흐르면서 서로 간섭현상을 일으켜 정보에 오류가 생기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는 1970년대부터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선폭을 효율적으로 줄이는 기술은 발전하면서도 기존 제조 공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 IT 전문지 벤처비트(Venturebeat)는 "현재 PC용 메모리(D램)는 전원을 끄면 정보가 사라지는 단점이 있으며, 휴대전화용 메모리(플래시메모리)는 처리 속도가 느리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기술 방식을 채용한 메모리반도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IBM은 지난달 말 기존 반도체보다 용량을 키우고 내구성도 강화한 'P램'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IBM에 따르면 이 기술을 적용한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고 불러오는 작업을 적어도 1000만번가량 반복할 수 있다. 기존 플래시메모리보다 300배 많은 수치다. P램은 2016년쯤 상용화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도 지난 18일 기존 메모리보다 내구성을 높이고 전력 소모를 줄인 차세대 반도체 'R램'을 학계에 공개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데이터를 읽고 쓰기를 1조번 반복할 수 있고 전력 소모도 기존 반도체보다 적다. 하이닉스 역시 지난 13일 차세대 반도체 'M램' 개발을 위해 일본 도시바와 합작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M램·R램·P램… 미래의 주인공은 누구?
M램, R램, P램 등 차세대 반도체는 초미세 회로에서 전류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반도체 소자 자체의 저항 수치 변화에 따라 정보를 저장한다. 따라서 회로 선폭을 줄여도 정보가 사라지지 않고 지금보다 훨씬 더 집적도를 높여 메모리 용량을 늘릴 수 있다. 또 이 반도체들은 전력 소모, 처리 속도 모두 기존 반도체보다 우월하다.
다만 정보를 저장하는 방식은 각각 다르다. M램은 소자가 지닌 자기적 성질인 자성(磁性)을 이용한다. 일반적으로 각 물체 내부에는 미세한 자석이 있어 자성을 띠는데 이런 자성의 정도를 적절히 변화시켜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다.
반면 R램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에 전압을 가해 제작한다. P램은 결정(結晶) 구조를 가진 특정 물질에 전류를 가하면 내부 구조가 바뀌는 원리를 이용한다.
이가근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각 메모리반도체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향후 새로 나오는 IT 기기의 특성에 맞는 제품부터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상호 보완 위한 합종연횡 활발
차세대 반도체가 장점이 많지만 단점도 뚜렷하다. 무엇보다 기존 제품과 달리 다양한 화합물 신소재를 사용하므로 제작 단가가 높다. 대중화를 위해서는 원천 기술만큼이나 싼 가격에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정 기술이 중요하다.
반도체 기업들은 필요한 기술을 서로 공유하는 협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공정 기술이 뛰어난 하이닉스가 M램 원천 기술을 가진 도시바와 손을 잡은 게 대표적 사례다.
하이닉스는 R램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미국 HP와 손을 잡고 있다.
일본 엘피다는 샤프와 손을 잡고 R램을 개발 중이다. 현재 메모리반도체(낸드플래시)의 1만배에 달하는 속도를 내는 R램을 2013년 상용화하는 게 목표다.
메모리반도체 1위 업체인 삼성전자는 예외다. 제휴보다는 자체 개발에 의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연구 인력이 충분하고 공정 기술과 원천 기술도 상당수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에는 P램을 자체 개발, 양산하기도 했다.
반도체업계는 2~3년 뒤 차세대 제품을 일제히 내놓고 한판 대결을 펼칠 전망이다. 하이닉스와 도시바의 경우 M램 양산 시점을 2014년쯤으로 잡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 가트너도 2014년부터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박성욱 하이닉스 부사장은 "차세대 메모리의 구조는 기존 메모리보다 간단하지만 신물질을 어떻게 활용해 생산 효율을 높이는지가 관건"이라며 "업체 간 전략적인 협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D램, 플래시메모리
현재 PC에 주로 쓰는 것이 D램이고 디지털카메라·스마트폰 같은 휴대기기에는 플래시메모리를 주로 사용한다. D램은 정보를 저장하고 불러오는 속도가 빠르지만 전원을 끄면 저장정보가 사라진다. 플래시메모리는 속도가 느리나 전원을 꺼도 정보가 남아 있다.
☞M램
전류와 함께 자기장이 가해지면 물체의 자성(磁性)이 변하고 저항값도 변하는 원리를 활용한 반도체. D램에 비해 전력소모가 약 1000분의 1에 불과하고 처리속도도 빠르다.
☞R램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도 일정 수준 이상 전압을 가하면 미약한 전류가 흐르는 현상을 이용한 반도체. 금속전극과 절연막으로 이뤄져 구조가 매우 간단하다. 휴대기기용 플래시 메모리 대체용으로 개발되고 있다.
☞P램
물질에 전류를 가하면 내부구조가 변하는 원리를 이용한 반도체. 크기가 작고 낮은 전압에서도 작동해 차세대 반도체 중 생산 비용이 제일 저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