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때문이지 뭐, 딴 이유가 있겠어?"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에 있는 작은 식당 주방에서 김치찌개를 끓여 내던 박모(여·59)씨는 한숨을 쉬었다. 박씨는 지난달부터 이 식당에서 일한다. 생활정보지를 뒤지고 뒤져 어렵게 얻은 직장이다. 아침 7시 30분 집을 나와 밤 9시 넘어서까지 그릇들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 평일엔 편의점 야간 근무를 다니는 남편(61)과 얼굴 마주칠 일도 별로 없는 팍팍한 생활인데, 손에 쥐는 건 한 달에 150만원 정도다. 일종의 맞벌이지만 형편이 펴지지는 않는다. 작년 말 대학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아들(30)의 컴퓨터 학원비로 500만원을 내 줘야 했을 때처럼, 가끔 예상치 않은 큰 지출이 있어서다. 박씨는 "아들이 한 번만 밀어달라고 하는데 외면할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일하는 엄마와 직장 구하는 아들, 우리 주변에서 그리 보기 힘든 풍경이 아니다.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50대 여성 고용률(전체 인구 중 몇 명이 고용되어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이 59.3%를 기록했다. 50대 여성 10명 중 6명이 일터로 나갔다는 뜻이다. 1992년 3분기(60.1%)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같은 시기 20대 남녀 고용률은 58.9%에 그쳤다. 50대 여성의 고용률이 20대 고용률을 앞지른 것은 지난 1983년 3분기 이래 처음이다. 1980년대 초만 해도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50대 여성의 비중이 컸다는 것을 감안하면, 산업이 고도화된 후 가장 높은 수준의 고용률로 분석된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50대 엄마들을 일터로 내보내는 주된 요인은 자녀들의 늘어나는 교육비다. 윤희주(51)씨는 3년 전부터 전업주부 생활을 청산하고, 신용카드 모집인으로 일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편 월급으론 대학에 다니는 아들 등록금과 고등학생 딸 학원비를 다 댈 수 없어서다. 한 달에 딸한테 들어가는 학원비 80만원을 대려면 윤씨는 신용카드를 10개 넘게 모집해야 한다.

50대 엄마들은 자녀들을 어느 정도 키워 놓았기 때문에 더 쉽게 일터로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에서 주관하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에 성공한 여성 10만여명 중 50대가 29%, 40대가 36%였다. 셋 중 둘은 40대 이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직장 경력이 없는 50대 여성이 뒤늦게 뛰어들 수 있는 일자리는 그다지 많지 않다. 1년 전 남편이 퇴직한 뒤부터 친구 소개로 청소 용역 업체에서 일하는 유모(55)씨는 하루 8시간, 주 5일 대학교 캠퍼스를 청소하고 월 102만원을 받는다. 유씨는 "우리 나이에 일자리를 찾으면 남들 하기 싫어하는 청소나 주방 일자리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유씨의 말대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올해 1분기 50대 여성의 일자리를 분석한 결과, 50대 고졸 여성의 취업자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만명 늘어난 72만명을 기록했는데, 늘어난 10만명 중 63%는 단순 노동이나 서비스업 종사자였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일을 나가는 50대 여성이 늘어나는 것은 남편들이 일찍 퇴직하는 경향과 맞물려 있다"며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이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