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미국의 특허 등록 1위는 IBM(5896건)이었다. 삼성전자는 4551건으로 2위에 올랐다. LG전자도 1490건의 특허로 9위를 차지했다. 등록 건수만 보면 한국은 '특허 강대국'이다.
그러나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필립스 등은 최근 한국 IT(정보기술)기업을 상대로 '특허공습'을 시작했다. 스마트폰, LED(발광다이오드) 등 첨단 분야에서 이들이 보유한 핵심 특허를 무기로 한국 기업을 옥죄는 것이다. 원천기술을 재빨리 응용해서 시장점유율을 높여온 한국 기업의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도 나온다.
◆"돈 많은 한국 IT기업을 노려라" 글로벌 기업의 특허 공세
스마트폰 시장은 가장 뜨거운 '특허 전쟁터'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히트하자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즉각 견제에 나섰다. 애플은 스마트폰을 작동시키는 핵심 소프트웨어인 운영체제 'iOS'를 갖고 있다. MS도 자사의 PC 운영체제인 '윈도'를 스마트폰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애플은 "삼성이 화면 크기를 줄이고 늘리는 터치 기술, 메뉴 구성방식, 제품 디자인 등을 표절했다"며 소송을 냈다. MS도 삼성전자에 대해 스마트폰 1대당 10달러의 기술로열티를 내라고 요구했다. 1년에 5000억원에 육박하는 액수다. MS는 이미 지난해 대만 스마트폰 업체 HTC와 특허 협상을 벌여 대당 5달러의 특허료를 받고 있다.
삼성과 HTC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는 미국 구글이 개발했다. 애플과 MS는 안드로이드가 자사의 기존 운영체제를 상당 부분 베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 오라클도 안드로이드가 자사의 '자바' 프로그램을 무단 도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드로이드는 무료로 공개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소송의 대상이 됐다. LG전자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있어 조만간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를 좌우하는 길목인 운영체제를 모두 미국 IT업체들이 차지한 채 '통행료'를 요구하는 셈이다. 삼성전자·LG전자 등은 "우리도 통신기술 특허가 많아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국내 기업은 제조기술과 관련된 특허는 많지만 운영체제나 소프트웨어 분야는 특히 약하다. 만약 소송에 질 경우 국내 업체들은 애플·MS·오라클 등에 줄줄이 로열티를 물어주게 생겼다.
◆따라가기 전략에 한계…원천기술 개발해야
'LED 전구'도 특허 전쟁이 치열한 분야다. 이 제품은 기존 전구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아 차세대 광원(光源)으로 각광받고 있다. 유럽의 세계적인 조명기기 전문회사 오스람과 필립스는 자사의 원천기술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삼성LED·LG이노텍·서울반도체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걸었다.
홍원진 트로이특허 대표변리사는 "한국 기업들이 해외 선진업체를 재빨리 벤치마킹해 '덩치'를 키우자 특허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9년 설립된 삼성LED는 지난해 바로 일본 니치아에 이어 세계 시장 2위에 올라섰다. LG이노텍도 세계 6위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 기업들은 이처럼 시장점유율에서 밀리자 자신들의 상대적 강점인 특허로 후발업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특허 소송을 내는 기업들이 가장 중요하게 지키는 철칙은 "돈 많이 버는 회사를 노려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수년간 글로벌 시장에서 눈부신 실적을 올려온 한국 IT 기업들이 주요 타깃이 됐다.
특허청에 따르면 2004년부터 올 3월까지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 간에 제기된 특허소송은 611건. 이 가운데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에 제기한 소송이 460건(75.3%)이고, 국내 기업이 외국 기업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151건(24.7%)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