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북서쪽으로 300㎞가량 떨어진 항구도시 함부르크(Hamburg). 이곳에선 유럽 최대의 도심 재개발 사업인 '하펜시티 프로젝트'가 10년째 진행되고 있다. 부두와 창고가 있던 낡은 항구인 하펜시티(Hafencity)를 주거·레저·문화·상업 등이 어우러지는 최첨단 복합도시로 탈바꿈시키는 157만㎡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오는 2025년 하펜시티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함부르크 도심은 지금보다 40% 이상 커진다.
이달 초 방문한 하펜시티는 말 그대로 최첨단 건물들의 경연장 같았다. 기름때에 오염된 강물과 낡은 공장이 가득한 쇠락한 항구도시의 흔적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예술가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벌인 듯, 깔끔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7~9층 높이의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곳곳에 푸른 공원과 널찍한 산책로가 마련돼 있어 마치 '공원 도시' 같았다.
하펜시티는 특히 에너지 소비 최소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곳에는 건물 자체적으로 냉난방이 가능하거나 혹은 소규모 발전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해 정부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특히 주거형 건물은 '친환경 인증'을 받아야만 건축 허가가 난다.
글로벌 생활용품업체인 유니레버(Unilever)의 본사 건물은 하펜시티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 건물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첫 친환경 빌딩으로, 하펜시티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유니레버 건물 1층에 들어서니 지붕에 있는 대형 유리창을 통해 강렬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펜시티 가이드인 한네 홀슈테게씨는 "건물 꼭대기에 특수 유리를 설치해서 자연광을 최대한 끌어들인다"며 "공기의 대류 현상을 이용하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하다"고 설명했다. 건물 외벽을 조각조각 난 옷감처럼 감싼 투명한 비닐 커버도 인상적이었다. 홀슈테게씨는 "장식용으로 설치한 것이 아니라,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특별히 만든 최첨단 장치"라고 설명했다.
조만간 입주할 예정인 독일 유력 주간지 슈피겔(Spiegel)의 신축 건물도 하펜시티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친환경 건물이다.
슈피겔 본사는 말 그대로 미래형 사무실의 본보기다. 이 건물은 지하 100m 깊이에 열교환 장치를 설치해 지열 난방 시스템을 갖췄다. 즉 지열(地熱)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에너지 자립형 건물이다. 심지어 화장실 변기에도 에너지 절감 노력이 스며들어 있다. 식물성 재료로 변기를 깨끗하게 정화하는 기술을 활용해 물을 거의 쓰지 않는다. 변기 물을 내리면 물이 살짝 흐르다 말지만, 오물 처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친환경 자재로 사무실을 꾸며서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도 문제없이 지낼 수 있다.
자전거 도로나 인도는 함부르크 다른 지역에 비해 널찍널찍하게 설계돼 있었다. 자동차 이용을 줄여서 도시 매연을 줄이려고 보행자들을 위한 공간에 더 신경을 쓴 결과다. 거리를 누비는 버스도 수소 연료전지로 움직이는 무공해 버스들이 대부분이다.
하펜시티는 지난 2001년 첫 삽을 뜬 이후 크게 변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떠나는 항구'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항구'로 변하고 있다. 현재 1700여명의 시민이 거주하고 회사 270여곳이 둥지를 튼 핵심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하펜시티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1만2000명이 거주하고 일자리는 4만개 넘게 창출되는 곳이 된다.
하펜시티는 유명한 관광 상품이기도 하다. 하펜시티를 둘러보기 위해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건축가와 정부 부처 사람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수십만명이 다녀갔다. 함부르크시는 시민과 관광객들의 요청에 따라 도보와 자전거로 진행되는 환경투어 상품도 선보였다. 친환경 도시를 만들려는 작은 노력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큰 힘이 된 것이다.
얀 리스펜스 함부르크 신재생에너지클러스터 소장은 "하펜시티는 함부르크에서 에너지 효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며 "단순히 부동산 재개발 지역이 아니라, 에너지 절감과 같은 친환경을 키워드로 해서 만들어낸 새로운 미래형 도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