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계약하면 4년 동안 거주 가능한 집 있어요?"

"○○학교를 배정받을 수 있는 물건도 있나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에 있는 한 부동산중개사무소에는 지난 10일 하루 동안 20통 가까이 전화가 걸려왔다. 상담 내용은 대부분 인근 청실아파트 주민들이 전셋집을 구해달라는 것. 중개업소 사장은 "전세보증금을 1000만~2000만원 더 올려줄 테니 전셋집만 구해달라는 이들도 있다"면서 "매물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팔려나간다"고 말했다.

(위 사진)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서울 강남 전세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다음 달부터 이주에 들어가는 대치동 청실아파트 1400가구가 '뇌관'이다. 여기에다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름방학 인기 학군 수요까지 겹쳐 있다. 당장 주변 지역 전세시세는 최근 2~3주일 새 5000만원씩 급등했다. 일부 전문가는 청실아파트발(發) '제2차 전세대란'이 서울과 수도권에 닥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전세시장에 한꺼번에 쏟아지는 1400가구

청실아파트에 사는 이모(34)씨는 요즘 인근 부동산중개업소에 전화해 도로 맞은편에 있는 선경·우성아파트 전세 매물과 시세를 알아보는 게 하루 일과다. 이씨는 "전세금이 오른 것은 둘째치고 아예 물건이 없다"며 "아이 교육 때문에 대치동에 계속 살고 싶은데 전셋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청실아파트 재건축조합이 지난달 23일 통과시킨 관리처분계획안을 다음 달 초 강남구청이 인가하면 이 아파트 주민 1378가구가 올 연말까지 모두 이주를 끝내야 한다. 서울 강남권에서 1400가구에 가까운 집이 전세 시장에 한꺼번에 쏟아지는 상황은 최근 2~3년 사이에는 없었다. 더구나 이들 대부분이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대치동 주변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대치동 M부동산공인 사장은 "본격적으로 이주가 시작되기 전에 전세 물건을 미리 알아보는 손님이 많아지면서 단지별로 10여개씩 쌓여 있던 전세 물건은 이미 동났다"고 말했다.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는 전세금 상승세

가파르게 치솟는 대치동 전세금 상승세는 이미 인근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5억2000만원 하던 역삼동 e편한세상(106㎡·32평)과 개나리 래미안(109㎡) 전세 보증금은 최근 5억5000만~5억8000만원까지 올랐고, 대치아이파크(78㎡)는 7000만원 가까이 상승한 5억원에 전세계약이 맺어졌다. 역삼동 J부동산공인 사장은 "역삼동은 대치동 학원가를 걸어서 다닐 수 있고 최근에 재건축한 새 아파트가 많아 인기가 높다"며 "반(半)전세나 월세 물건도 단지마다 1개 정도씩 남았다"고 말했다.

자녀가 학업을 마치거나 은퇴한 일부 주민은 전세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송파구나 분당·판교 신도시 등으로 이주를 준비하면서 이들 전세 시장도 다시 들썩일 가능성이 있다. 청실아파트에 사는 이모(62)씨는 오는 8월 동판교 휴먼시아 아파트로 이사를 결정했다. 그는 "판교는 새 아파트에다 생활환경이 쾌적하고 신분당선 연장선도 개통될 예정인데 굳이 값비싼 대치동에 살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전세란, 7~8월 본격 시작될 듯

지난달 23일 청실아파트의 관리처분 결정 후 이 아파트 주민이 새 전셋집을 구한 비율은 전체 가구의 5%(70가구)도 안 된다는 게 대치동 중개업소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주 일정이나 지원비가 확정되지 않아 전셋집을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고 있는데도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일부 전셋집 거래만으로 가격 상승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청실아파트 이주 계획이 확정되는 다음 달 중순부터 전셋집 구하기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강남권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S부동산중개소 사장은"7~8월이면 지금보다 전세금을 얼마나 올려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 집주인도 있다"며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면 많게는 1억원 가까이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반포·잠실 재건축 단지가 본격적으로 이주를 시작할 때에도 전세금 급등세는 주변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