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11시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에 있는 현대기아차 기술연구소(남양연구소). 박사급 500여명 등 1만여명(연구원 8000여명)이 있는 기술연구소는 초특급 보안 시설이었다. 보안요원 없이는 외부인의 단순 방문 자체가 힘들고, 취재는 더더욱 '불가(不可) 1순위 대상'이다. 보안요원은 기자의 휴대폰 카메라에도 딱지를 붙여 사진 촬영을 불허했다.

회사측 허가를 얻어 사진기자까지 함께 들어가 취재를 한다는 것에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거대한 연구소 곳곳의 위세에 주눅이 들어버렸다. 남양연구소 내 '풍동(風洞) 시험장'. 아시아 최대 규모다. 풍동 시험장은 공기가 흐르는 현상이나 공기의 흐름이 물체에 미치는 힘 등을 조사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시설. 배구장만한 크기의 풍동시험장 한가운데에는 검은색 제네시스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차 앞에는 높이 7m에 너비 4m인 통풍구가 있다. 여기서 최고 풍속 200㎞의 바람이 나온다.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 풍동 시험장에서 현대기아차 연구원이 연기 발생기에서 나오는 연기로 풍속실험을 하고 있다. 자동차 위쪽 흰 연기의 흐름으로 최고 시속 200㎞ 풍속에서의 공기 저항을 연구한다.

풍동시험장 기능시험1팀 장진혁 책임연구원은 밤낮 자동차가 받는 공기 저항을 연구한다. 공기 저항을 줄여야 연비가 개선되기 때문에 모든 신차는 그의 손을 거친다.

장 책임연구원은 이날 이미 출시된 제네시스 차량에 시속 50~100km 풍속 실험을 했다. 그가 연기 발생기(smoke generator)를 갖다대자, 연기가 자동차 표면을 따라 흘러가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이 같은 실험을 수천번도 더 했어요. 무게 2000㎏ 정도의 자동차가 바람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g 단위까지 재고 있어요." 차 무게의 200만분의 1까지 측정한다는 것이다. 풍동시험장 엔지니어들의 이런 노력은 최근 출시된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연비 향상에 결정적이었다. 자동차 맨 앞에 개폐가 가능한 덮개를 설치, 고속 주행 시 엔진 냉각이 필요 없는 경우에는 덮개를 닫는 장치를 개발한 것이다. 덮개를 닫으면 공기저항력이 줄어들어 연비가 3%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첨단 장치 덕분에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일본 도요타 캠리보다 연비가 6% 정도 높다.

풍동시험팀은 또 차량 밑을 덮는 '언더커버'를 개발, 차량 연비를 개선시켰다. '언더커버'를 설치한 신형 에쿠스는 구형 에쿠스보다 연비가 10% 이상 향상됐다.

이 같은 '언더커버' 기술은 요즘 차 업계에서 일반화됐지만, 10년 전에는 자체 개발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장 책임연구원은 "10년 전에는 해외에서 8시간 실험하는 데 5000만원을 줘야 했다"면서 "하지만 요즘엔 마음 놓고 각종 실험을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 1999년 450억여원을 들여 풍동시험장을 완공했다.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를 방문한 본지 기자(사진 제일 왼쪽)가 수소연료차, 하이브리드카 등 최신 기술을 탑재한 차를 구경하고 있다.

남양연구소의 부지면적은 347만㎡. 축구장 500개 크기다. 이 연구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동차 기획, 디자인, 엔진 및 동력장치 개발, 설계, 시제품 생산, 실험, 완성차 생산 및 평가 등 자동차의 모든 공정이 한곳에 모여 있는 곳이다. 현대기아차가 만드는 어떤 차종이든 남양연구소에서 시제품을 실제로 생산한 다음, 각종 실험을 거친 뒤, 완성차까지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국내외 현대기아차 공장 간부들은 현대차 울산 공장이나 기아차 소하리 공장에 가는 게 아니라 남양연구소에 와서 생산 노하우를 습득하고 돌아가 현지에서 자동차를 생산한다.

이날 오전 11시 28분. 풍동시험장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있는 충돌시험장. 지난 2005년 12월 완공된 충돌시험장은 자동차의 안전성을 측정하는 곳이다.

충돌시험장에는 올 1월 출시된 경차 '모닝' 5도어 해치백이 한쪽 끝에 세워져 있었다.

다른 한쪽엔 고정벽이 놓여 있었고, 고정벽 양 옆에는 일반 햇빛보다 두배 밝은 20룩스(Lux)의 조명 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충돌 장면을 고속 촬영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본지 사진 기자의 충돌 장면 촬영은 끝내 허용되지 않았다.

충돌시험 진행 요원이 마이크로 충돌 시험 개시를 선언하자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모닝이 전 세계 표준 충돌 속도인 시속 56㎞로 고정벽에 정면 충돌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모닝 앞부분이 '박살'났다. 주변에 있던 연구원 10여명이 모닝에 다가가 피해 상황을 살폈다. 자동차 문이 열리는지, 연료탱크는 온전한지, 더미 상태는 괜찮은지 일일이 확인했다.

모닝에는 모형 인형(더미) 2개가 탑재돼 있었다. 인형 1개당 가격은 1억5000만원. 더미 한개당 80여개의 센서가 부착돼 있다. 이 센서들은 차 뒤에 있는 계측 장비에 가속도·하중·속도 등 충돌로 발생한 각종 데이터를 저장한다. 충돌시험장 이승욱 책임연구원은 "자동차가 새로 나오기 전까지 한 차종에 대해 이같은 실험을 100여회 정도 실시한다"고 말했다.

한 번 실험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략 2000만원 정도. 여기에 시제품 차량 가격 1억원까지 합치면 연간 실험 비용은 수천억원을 훌쩍 넘긴다. 시제품 차량은 완성차 형태로 대량 생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가격이 일반 차량에 비해 훨씬 비싸다.

남양연구소 엔지니어들의 땀방울 덕분에 현대차는 미국 교통안전공단이 수여하는 '가장 안전한 차' 명단에 9개 차종이나 올려놓았다. 8개 차종을 명단에 올린 도요타보다 많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4.5㎞ 길이의 주행시험장에는 현대기아차뿐 아니라 경쟁사인 GM의 쉐보레 볼트, 폴크스바겐 골프, 도요타 프리우스 등이 주행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아직 출시되지 않은 차량은 검은 가림막을 두르고 주행 테스트 중이었다. 주행시험장 옆 주차장에는 충돌시험한 자동차들로 꽉 차 있었다. 피아트 500이나 GM의 스파크 등도 보였다. 남양연구소 김민희 대리는 "연구소에는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등 세계 각종 자동차 8000여대가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의 꽃으로 불리는 디자인센터와 동력장치(파워트레인) 개발센터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이 두곳은 취재진의 접근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