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재벌들이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3일 보도했다.
FT는 반도체와 휴대전화로 잘 알려진 삼성그룹이 여름 드레스와 블라우스를 만드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면서 운을 뗐다. 또 삼성그룹의 출발점이 1950년대의 모직 공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더 적다고 덧붙였다.
이런 변화는 재벌의 생존에서 신사업의 재발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고 FT는 전했다. 아울러 최근 불어닥쳤던 경제 위기에서도 화려한 실적을 거둔 재벌들이 계속해서 신사업으로 촉수를 뻗치고 있는 것도 놀랍다고 언급했다.
FT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재벌들의 사업 영역이 굳이 제조업 밖으로 확대될 필요성은 적다고 본다. 그러나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재벌들이 과감하게 노선을 변경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FT는 삼성그룹이 반도체에서 제약으로, LG전자는 냉장고에서 폐수처리업으로 사업을 다각화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또 룽셩, 양지장중공업과 같은 중국 조선업체들과의 경쟁을 벌이게 된 현대중공업은 태양력, 풍력터빈, 역외 정유 시설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전했다.
CLSA 증권의 숀 코크런 한국 리서치 부문 대표는 "철강과 해운 부문에서 재벌들이 한계까지 성장했느냐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가전, 자동차, 석유화학과 같은 부문에서 한국 기업들의 성장세는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FT는 지난 2009년 삼성전자가 휴렛팩커드(HP)를 따라잡고 매출액 기준 세계 최대 IT 기업으로 등극한 것과, 삼성의 스마트폰 갤럭시가 애플의 아이폰에 필적할만한 제품으로 성장한 것을 거론했다. 또 기아차, 현대차는 세계 5위 자동차업체로 올라섰다면서, 미국에서 도요타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서구의 시각에선 재벌은 여전히 불투명한 점이 많지만,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지배구조를 깨끗히 정리했고, 부패에 대한 감독도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FT는 지난 1997~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악몽을 기억하는 재벌들이 신중하게 움직이는 점에도 주목했다. 당시 재벌들은 과도하게 사업을 확대했고 결국 붕괴됐다. 일각에선 부패된 재벌 시스템이 막을 내릴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었다.
그러나 FT는 재벌의 흥망 선례도 언급했다. 하병기 산업연구원 부원장은 "재벌들이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에서만 성공해왔기 때문에 새로 뛰어든 사업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며 "대우, 쌍용과 같은 기업은 (급격히) 확장하고 나서 무너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