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된 한국 건설사 공사 현장이 한 둘이 아니죠. 걱정됩니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도착해 중심지인 모니봉 거리에 이르자 눈에 들어온 것은 건설 공사가 중단된 골드타워42 빌딩의 앙상한 모습이었다. 42층 높이로 건축 예정이던 이 건물은 20여개 층의 골조 공사만 진행된 채 몇달째 그대로 멈춰 서 있다.

이 건물은 2008년 착공 당시 프놈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될 것으로 주목받았고 캄보디아 부총리가 착공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공사인 한일건설이 국내에서 워크아웃(채권단 주도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면서 이 건물에 대한 신규 공사자금이 지원되지 못해 도심의 흉물처럼 방치돼 있다.

한 프놈펜 현지 교포는 "캄보디아 당국이 이 건물의 완공이 어렵다고 보고 한국 건설사와 채권단에 사업장을 매각하자고 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현지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 주도의 PF 사업장이 곳곳에서 멈춰 서자 한국에 대해 원망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시(市)의 금융 중심가에 건설되다 공사가 중단된 골드타워42 빌딩. 이 건물은 한일건설이 시공하다가 이 회사가 작년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면서 자금 부족으로 공사가 진행되지 못해 방치된 상태다.

◆ 동남아 곳곳 ‘한국 PF’ 공사중단·분양난항

국내에서 건설사와 저축은행이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대규모 개발금융) 대출 부실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국내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상당수 한국 PF 사업장들이 자금 부족으로 표류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경우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 주도로 추진돼왔던 ‘캄코시티(CAMKO City)’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사업은 프놈펜시 벵칵 호수 인근의 132만㎡ 규모 부지에 상업시설과 주거시설 등을 건설하는 총 20억달러 규모의 대형 민간 건설사업이다. 2018년까지 단계별로 아파트단지와 금융센터, 국제학교, 레저시설 등이 건설될 계획이었다.

한 프놈펜 현지 교포는 "캄코시티 일부 건물 완공이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고 완공 건물도 분양이 잘 안된다"며 "이 사업을 주도한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면서 과연 사업을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 현지 업계와 당국에서 의문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저축은행은 또 프놈펜의 신공항 건설 사업도 추진해왔지만 최근 자금 부족으로 진행이 쉽지 않게 되자 사업권 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국내 중소 건설사들이 투자한 프놈펜시 소재 PF 사업장인 ‘드 캐슬’도 완공이 늦어지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시의 경우에도 일부 국내 워크아웃 건설사가 아파트를 지었다가 분양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호찌민 현지 교포는 "국내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들의 분양이 쉽지 않다"며 "현지 아파트 분양 광고에 한국 건설사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건설업체 K사의 경우 베트남 호찌민시 소재의 PF 사업장을 매각하라는 국내 채권은행들의 요구를 받고 매각처를 계속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건설사·저축銀 무리한 해외진출… 저축은행 부실사태 ‘직격탄’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한국 PF 공사현장이 위기를 맞은 것은 건설사와 저축은행의 무리한 해외사업 확장 때문이다.

국내 건설경기가 수년째 침체에 빠지자 건설사와 저축은행은 “새 성장동력을 찾겠다”며 너도 나도 베트남 호찌민ㆍ하노이, 캄보디아 프놈펜 등지에 진출했다. 하지만 철저한 현지 부동산시장 분석 없이 뛰어든 PF 사업은 미분양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건설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다소 부진했던 것도 영향을 끼쳤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워크아웃이나 회생절차(옛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국내 건설사가 급증했다. 이에 따라 이들 건설사의 해외 사업장은 공사대금이 지원되지 못해 팔지도 짓지도 못하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최근 이들 PF 사업장에 불어닥친 태풍은 저축은행 부실 사태다. 국내 저축은행이 동남아 현지에서 사업 기획부터 자금지원 등을 한꺼번에 관리해왔는데 저축은행들이 무너지자 이들 PF 사업장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현지에 캄코뱅크를 세워 캄코시티 프로젝트에 수천억원의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부산저축은행이 한국에서 영업정지됐다는 소식이 현지에 전해지면서 이미 완공된 건물들은 분양이 어려워졌고 건설 중인 건물들의 경우 완공이 늦어지고 있다.

◆ 검찰, 저축은행 동남아 투자금 추적 나서

검찰이 동남아시아 PF 사업장에 대한 수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저축은행 비리 추적 차원에서 동남아 현지 PF 사업장 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우선 캄보디아 검찰과의 수사공조를 통해 부산저축은행이 해외 부동산개발 명목으로 프놈펜에 투자한 5000억원가량의 자금을 추적키로 했다. 검찰은 지난달 26일과 27일 대검 국제협력단 소속 연구관(검사)을 프놈펜 현지에 파견해 캄보디아 검찰과 수사공조를 시작했다.

검찰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은 지난 2005년 8월부터 캄보디아 캄코시티 개발사업에 3534억원, 2007년 8월부터 시엠립 신국제공항 개발사업에 661억원 등 총 5000억원 안팎의 자금을 현지에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에 대출하는 방식으로 투자했다.

검찰은 현지에서 대부분의 건설사업이 중단돼 자금 회수가 쉽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예금보험공사도 부산저축은행이 캄보디아에 투입한 5000억원을 회수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예보 관계자는 “담보가 거의 설정돼 있지 않아 투자금 회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또 부산저축은행그룹이 해외 불법대출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잡고 자금 흐름을 추적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비자금을 만든 후 국내로 들여왔거나 해외에 재산을 은닉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 "건설 차질로 한국 이미지 타격" 우려

동남아 현지 교포들은 곳곳에서 한국 건설사와 저축은행의 PF 사업장이 문제가 되자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 실추가 우려된다고 말하고 있다.

프놈펜과 하노이에서 만난 복수의 현지 교포들은 "PF 사업장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현지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 건설사와 금융회사에 대해 원망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건설·금융 이외의 한국 기업들도 이 때문에 이미지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또 현지에선 “앞으로 한국 업체가 대규모 건설사업을 수주하는데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지 사업이 난관에 부딪히면서 국내 업체들간의 불협화음도 커졌다. 캄코시티 시행사인 ‘랜드마크 월드와이드’는 부산저축은행을 상대로 지난해 9월부터 자금지원이 중단되는 바람에 34억원을 손해봤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작년 6월 부산저축은행이 1500억원을 유상증자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한 KTB자산운용도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개발 사업에 540억원가량을 투자했다 회수가 어려워지자 법적 문제제기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