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사건이 '캄보디아 개발사업'을 매개로 정치권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이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개입했다"고 주장한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개발사업은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부산저축은행은 불법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약 5000억원을 투입해 캄보디아에 대규모 개발 사업을 벌였지만 공사는 자금 부족으로 이미 중단됐다. 대출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이 대출금 중 일부를 해외에서 비자금으로 만든 단서를 포착하고 수사 중이다.

공사비 중 일부 비자금 만든 정황

부산저축은행이 캄보디아에 투자한 4962억원은 정국에 또 다른 뇌관이 될 가능성이 있다. 부산저축은행이 그중 일부를 비자금으로 조성한 정황을 검찰이 잡고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투자금 중 수백억원이 사업 컨설팅비 명목으로 조세피난처 등에 세워진 페이퍼컴퍼니 5~6곳으로 흘러간 단서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비자금을 만든 후 국내로 들여와 로비 자금으로 사용했거나 해외에 재산을 은닉했을 가능성 모두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4월 캄보디아에 검사를 급파해 현지 검찰과 공조 수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 결과 비자금이 정·관계로 흘러간 것으로 확인되면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4962억원 투자한 개발사업 중단

부산저축은행은 캄보디아에 9개 SPC를 세우고 모두 4962억원을 투입해 개발사업을 벌였다. 120개에 달하는 불법 SPC를 세워 국내외에서 벌인 각종 사업 중 가장 큰 규모다.

부산저축은행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30㎞ 떨어진 132만㎡의 부지에 한국형 신도시를 세우려는 '캄코 시티' 개발에만 2984억원을 쏟아부었다. 부산저축은행은 2003년부터 캄코시티 개발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총 사업비 29억달러(약 3조원)를 투입해 2018년까지 단계별로 아파트단지, 금융센터, 국제학교, 레저시설을 지을 예정이었다. 부산저축은행은 캄보디아의 공항, 고속도로 개발사업에도 각각 1200억원과 542억원을 쏟아부었다.

부산저축은행은 캄보디아 개발사업에 단지 돈만 빌려준 투자자가 아니었다. 사업 기획에서부터 모든 과정을 주도했다. 캄코 시티 시공사인 한일건설은 "우리가 시행사를 세워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받은 게 아니라 부산저축은행이 주도하는 사업의 시공만 맡은 단순 도급 사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일건설이 지난해 6월 워크아웃을 신청하자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개발사업은 완전히 좌초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2월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면서 돈줄이 끊기자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공사가 올스톱됐다.

저축은행 본분 망각한 해외 개발

금융당국은 부산저축은행이 캄보디아 개발사업에 투입한 4962억원을 회수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예보 관계자는 "담보가 거의 설정돼 있지 않아 투자금 회수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 개발이란 것 자체가 서민금융기관인 저축은행의 본분과는 거리가 멀다"며 "사업 규모도 허황될 만큼 컸다"고 말했다. 통상 저축은행은 해외 부동산 개발에 투자하더라도 은행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소수 지분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부산저축은행은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사업이 난관에 부딪히면서 동업자들끼리 불협화음도 불거졌다. 시행사인 '랜드마크 월드와이드'는 부산저축은행을 상대로 "지난해 9월부터 대출을 중단하는 바람에 생긴 연체이자 34억원을 지급하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현지 교민회 관계자는 "부산저축은행 대주주들과 광주일고 동문인 랜드마크 월드와이드 대표 L씨가 처음에 선후배 관계로 동업하다가 사업이 어려워지자 사이가 틀어졌다"고 전했다.

지난해 6월 부산저축은행이 1500억원을 유상증자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한 KTB자산운용도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개발사업에 540억원가량을 투자했지만 회수가 어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