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검찰간부의 상가(喪家). 상주와 가까운 각계의 문상객들이 자정을 넘어서까지 모여든 이 상가는 한 사람이 나타나면서 왁자지껄해졌다. 문상객들이 이 사람 주변으로 모여들어, 이 사람이 앉은 자리는 마치 공식행사 때 헤드테이블 같았다고 문상을 갔던 한 법조인은 전했다.

이 사람은 부산저축은행의 브로커 역할을 하다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해외로 도피한 박태규(72)씨다. 검찰은 인터폴을 통해 박씨를 수배하고, 박씨의 통화내역을 확보해 그와 자주 통화한 인사들을 소환조사 중이다. 박씨는 작년 6월 부산저축은행 유상증자 때 개입해 6억원을 받는 등 정·관계 로비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남 함안 출신으로, 마산에서 중·고교를 나온 박씨는 정치권과 관계(官界)는 물론 법조계, 재계 고위층에도 폭넓은 인맥을 가진 '거물 브로커'였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는 장면·박순천씨 등이 이끌던 옛 민주당 신파(新派) 계열로 정치권에 잠시 몸담았던 적이 있어서 동교동계 등 구여권 인사들과 가깝다고 한다. 여권에선 실세 L의원을 비롯해 청와대 전 수석 L·J씨와도 친분이 있고, 한나라당 주류인 A·K의원 등과 자주 통화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도 전직 법무장관, 전직 검찰총장 등이 그와 아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전직 총장은 "총장 퇴임 후 1~2번 만났는데 나보다 (나이가) 위인 듯한데도, 나에게 '형님 형님' 했다"고 말했다.

재계에선 그가 작년 6월 부산저축은행 유상증자 때 투자한 삼성꿈장학재단이 속한 삼성그룹 고위층과도 친분이 있고, 모 대기업 총수와도 개인적으로 가깝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고향인 경남 함안 향우회에도 자주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함안 출신 고위법조인은 "YS정권 시절 향우회에 갔더니 정치인 K씨 등을 언급하며 동교동계와 친하다고 뻐기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과도 동향이어서 가깝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함안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씨와 작년 말에도 만났고 3개월 전쯤 통화도 했는데, 전직 비서실장과는 가까운 사이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유력인사들이 많이 가는 서울 서초구의 M호텔 사우나와 헬스클럽을 출입했고 일식집은 논현동이나 역삼동의 최고급 집을 단골로 잡아놓고 다녔다고 한다.

지인(知人)들과의 술자리에서 그와 몇 차례 합석한 적이 있다는 변호사는 "부산저축은행 로비만이 아니라 인사개입 같은 것도 많이 하고 다닌 사람"이라며 "너무 많은 사람과 알고 많은 일에 개입해 '위험한 인물이니 접근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재계의 한 인사는 "박씨는 온갖 곳에 '해결사'로 끼어든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