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가 5월 미국 시장에서 도요타를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3위에 오를 전망이 다. 3·11 일본 대지진 여파가 빚은 일본 경쟁업체들의 공급 차질에 따른 반사 이익이 현대·기아차로 집중될 것이라는 업계의 예측이 그대로 맞아 떨어진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이달 높은 판매량은 천재지변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이번 점유율 상승을 계기로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판매량이 지속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日 지진 '반사이익' 고스란히… "신차 적기 공급 주효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트루카는 현대·기아차가 5월 미국 시장에서 전년 동월대비 43.4% 급증한 11만5434대를 판매, 포드와 GM에 이어 3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현지 언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장 점유율은 10.9%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기아차가 미국에서 3위에 오르는 것도, 시장 점유율이 10%를 넘어서는 것도 처음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4월 미국에서 10만8828대를 팔아 시장점유율 9.4%로 6위를 차지했었다.
일본 대지진에 따른 생산차질로 신차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던 도요타(렉서스·사이언 브랜드 포함)는 5월 한 달 동안 전년 동월대비 32.8% 급락한 10만9416대, 혼다(어큐라 포함)는 20.7% 줄어든 9만2889대를 판매할 것으로 트루카는 추산했다.
트루카의 제스 토프락(Toprak) 애널리스트는 "일본 업체들의 지진 피해로 현대·기아차가 반사이익을 얻게 됐다"면서 "현대자동차가 제대로 된 제품을 적시에 공급하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시장에서 중형·대형급 판매 증가로 1대당 평균 판매가격(ASP)을 높여가며 수익 구조를 개선하고 있는 것도 호재로 분석된다. 높은 수익성을 기반으로 더욱 활발한 판촉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올 1분기 기준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ASP는 전년 대비 19.8% 증가했다. 현대차는 올 4월부터 미국에서 중고차 가치보장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하이브리드카 출시로 고(高)연비 위주의 판촉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5월 미국 시장에서의 판매실적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면서 "일시적인 판매 증가에 그치지 않도록 경쟁력 있는 신차 투입과 다양한 마케팅을 펼쳐 저변 확대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 日 업체 정상화 늦어질 듯… 부족한 현지 생산능력이 걸림돌
현대·기아차의 5월 미국시장 점유율 상승은 예견된 일이었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주력모델인 쏘나타와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 옵티마(한국명 K5) 등은 도요타 캠리와 코롤라, 혼다 어코드, 시빅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모델이다. 이들 일본산 경쟁차종의 미국 내 수급 차질과 신형 모델의 출시 연기, A/S 부품 공급에 대한 미국 소비자의 우려 등이 겹치며 줄어든 일본차 수요가 현대·기아차의 동급 모델로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화증권 강상민 애널리스트는 "일본 자동차업체들의 지진피해 복구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지진 영향이 2분기(4~6월)에 집중될 것으로 보이며 본격적인 정상화는 내년 이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대지진에 따른 일본업체의 생산 차질 규모는 3월말 기준 50만대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 국내의 경우 3월 일본 주요 완성차업계의 생산대수는 평균 60%의 감소폭을 나타냈다. 또한 북미 등 해외 지역에서도 감산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인 글로벌인사이트는 올 2분기 일본 내 자동차 생산 차질이 1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지진 피해가 가장 심했던 도요타의 경우 일본 내 18개 공장에서 4월 8일까지 총 26만대의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 약 150종의 부품이 조달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1분기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빅3'의 합산 순이익은 전년 동기대비 43%나 감소한 1010억엔에 그쳤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KARI) 정희식 연구위원은 "일본 완성차업체들은 부품 공동 구매, 부품 생산의 분산 등으로 대지진 피해 해결에 나서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 증가에 있어 풀어야 할 과제는 현지 생산능력 부족이다. 연간 최대 30만대 규모로 설립된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은 이미 포화상태로, 하루 10시간 2교대, 격주 토요일 8시간 근무 체제를 가동하며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이곳 공장을 110% 가동해 33만대를 생산한다는 방침이지만, 월 6만대 안팎에 이르는 현지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현대차는 약 1억7300만달러(약 1890억원)를 투자해 이 공장 엔진 생산설비를 증설, 내년 3월부터 현지에서 만드는 준중형차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에 탑재되는 1.8L(리터)급 누우 가솔린 엔진을 비롯, 2.4L급과 2.0L급 터보 엔진 등을 생산할 계획이다. 완성차 생산라인 증설에는 아직까지 유보적인 입장이지만, 회사 안팎에서는 현대·기아차의 미국 내 생산능력 확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구나 아직까지 미국 내 판매량의 상당분을 한국에서 수출하고 있는 현재 생산구조가 지속될 경우 안정적인 수출물량 공급이 필수적이다. 6월 임금단체협상을 앞두고 현대차 노사는 핵심 화두인 주간연속 2교대제와 관련한 뚜렷한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의 호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한국에서의 완성차 공급 안정화 또한 주요 과제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