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자동차 업체가 올해 초 출시한 중형차에 장착된 후방 카메라는 3개 중소업체의 합작품이다. 휴대폰부품업체 엠씨넥스와 반도체설계기업 엠텍비젼, 소프트웨어(SW)개발업체 클레이픽셀이 힘을 합쳐 개발했다. 엠씨넥스는 카메라 제조를, 영상처리칩 설계는 엠텍비젼이, SW기술 개발은 클레이픽셀이 맡았다.

세 업체는 모두 서울 디지털단지의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해 있다. 지하철1·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나와 150m쯤 직진하면 엠텍비젼(월드메르디앙벤처센터2차)이 있고, 여기서 북쪽으로 300m 정도 가면 클레이픽셀(에이스테크노타워10차)이 나온다. 디지털단지역 뒤편에는 엠씨넥스(한신IT타워2차)가 있다. 모두 반경 200~300m에 몰려 있다.

엠씨넥스 민동욱 사장은 "개발 과정에서 서로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마다 언제든지 달려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았다"며 "가까운 곳에서 함께 연구하지 않았으면 개발 기간이 훨씬 더 오래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큰 빌딩에 작은 중소기업 10~30개가 입주해 있는 아파트형 공장이 신제품 개발의 산실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중소업체 10만개 이상이 입주해 있는 서울 구로·가산동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 아파트형 공장은 기술 융합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을 탄생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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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발한 정보 교환과 함께 값싼 부품도 손쉽게 구해

바이오실험장비업체인 로고스바이오시스템스는 자동 세포배양기기의 조작화면을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들어가는 터치스크린으로 만들었다. 이 업체 정현철 대표는 외국 제품보다 크기를 줄이려고 골몰하던 중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한 외주업체에서 "내비게이션 업체의 과다 경쟁으로 디스플레이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장 터치형 내비게이션 디스플레이를 배양기기에 달아 버튼 부분만큼 크기를 줄일 수 있었다.

이 회사의 외주업체 25곳 중 10곳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 몰려 있다. 정 대표는 "그때그때 필요한 주문을 내리면 아파트형 공장 단지 안에서 금방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장점 때문에 각지에 흩어져 있던 자회사를 하나의 아파트형 공장으로 모으는 경우도 있다. 구로동의 아파트형 공장 '대룡포스트타워'에는 의료용 SW업체 인피니트헬스케어(12층)와 의료장비유통업체 TIMS(6층), SW개발업체 제론헬스케어(4층)가 함께 있다. 이곳으로 이전하기 전까지는 서울 서초동, 염창동, 양재동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한번 회의를 하려면 직원들이 모이기까지 1시간 이상 걸렸다. 지금은 단 5분이면 족하다. 이 회사 강명호 부장은 "아파트형 공장으로 이사 오면서 프로그램이나 기자재도 함께 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입주기업의 81%가 IT업종… 국내 대표 디지털단지로

서울 구로·가산동에 198만2000㎡ 규모로 조성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대규모 아파트형 공장 단지다.

LG전자·코오롱 등 대기업 연구소와 IT(정보기술), 소프트웨어, 패션디자인 등 다양한 중소·벤처 기업이 몰려들면서 2000년 849개였던 입주 업체 수가 올해 10만490개로 12배 이상 증가했고 아파트형 공장 수도 20개에서 101개로 늘었다.

중소·벤처기업들이 2000년대 초반 아파트형 공장을 찾은 배경에는 저렴한 분양가와 관리비, 정부의 세제 지원정책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최근에는 조금 달라졌다. 다른 업체들과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입주하는 기업이 늘었다. 한 예로 헬스케어(건강관리) 기계 제작과 소프트웨어 업체만 디지털산업단지에 200여곳이 몰려 있다. 동종 업체가 몰리다 보니 필요한 부품이나 소프트웨어를 이곳에서 모두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최근엔 서울 성수·영등포동, 경기도 광명·용인시 등으로 대형 아파트형 공장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3.3㎡당 300만~400만원 하던 분양가가 최근에는 700만~800만원까지 올랐다. 또 서울 강남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기능은 아파트형 공장이지만 취득·등록세 100% 면제 등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오피스 빌딩도 있어, 분양 조건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