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 ·월간 'BBC 톱기어' 한국판 편집주간

지난해 사상 최고의 실적을 거뒀던 수입차 시장은 올 들어서도 거침없습니다. 3월에는 시장 개방 24년 만에 처음으로 월간 판매대수 1만대를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10년 전인 지난 2001년의 '연간 수입차 판매대수'가 지금의 한 달치에도 못 미치는 7747대였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도 이만저만 아니지요. 올해 4월까지의 누적 판매대수 역시 이미 지난해 같은 기간을 훨씬 웃돌고 있습니다. 특히 수입차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종이 배기량 2000cc 미만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변화지요.

급팽창 중인 수입차 시장의 분위기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각 수입차 회사들은 연초부터 앞다퉈 신차를 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눈여겨볼 특징이 있어요. 바로 예전과 달리 대중적 성격의 차종이 대거 들어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도요타 코롤라와 폴크스바겐 제타는 그 대표적인 예지요. 나란히 올해 서울모터쇼를 통해 국내에 처음 선보인 이들은, 수입차 시장의 변화와 국내 소비자들의 달라진 인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동차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코롤라는 1.8L 132마력 휘발유 엔진을 씁니다. 지난 30여년간 960만대 팔린 제타는 1.6L와 2.0L 디젤 엔진을 올리지요. 두 차의 가격은 2000만원대 중반~3000만원대 중반입니다. 가격만 국산차급 눈높이에 맞춰진 게 아니에요. 세계 곳곳에서 흥행파워를 과시해온 이들은 성능과 장비, 실내구성, 끝마무리 등 다양한 면에서 동급 국산차와의 화끈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강력한 자국 브랜드를 갖고 있는 자동차 시장입니다. 코롤라와 제타 같은 글로벌 베스트셀러들이 이처럼 만만찮은 한국 세단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외적 팽창뿐 아니라 실속과 질적 향상에도 눈길을 돌리는 수입차 시장의 현주소를 반영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수입차는 무조건 국산차와 다르고 고급스러우며 값비싸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거지요. 동급 국산 세단보다 분명히 뛰어날 거라는 기대나 과시욕 때문이 아니라, 국산차와의 꼼꼼한 비교를 거쳐 온전히 자신의 취향에 따라 수입차를 선택하는 소비패턴이 점점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국산차보다 편의장비는 모자라지만 메커니즘이 마음에 들어서, 연비가 탁월해서 구입하는 식이지요.

수입차 시장의 이 같은 변화는 국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에도 긍정적인 자극제가 될 겁니다. 어차피 해외 곳곳에서 맞붙고 있는 경쟁자들과 이제는 안방에서도 마주치게 된 셈이니 건강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측면에서는 소비자들 또한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값비싼 프리미엄급 중형 세단이 판매 선두를 다투는 한국 수입차 시장의 특이한 구조를 생각해도 두 손 들어 반길 변화입니다. 자고로, 건축물이든 자동차 시장이든 맨 아래층이 튼튼해야 오래오래 버티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