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신도시 백현마을 4단지 전경. 이 아파트는 준공된 지 1년 5개월째 빈 아파트로 남아 있다.

“곧 입주한다더니 아직도 빈집이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가게를 늦게 낼 걸 그랬어요. 아예 거리 자체에 사람이 없으니 원….”(판교 신도시 백현마을 3·4단지 인근 A제과점 주인)

‘제2의 분당’, ‘수도권의 마지막 노른자’라고 불리는 판교신도시의 백현마을 3·4단지 일대. 이곳은 분당신도시 내에서도 가장 번화가인 서현동과 판교신도시가 만나는 지점으로 입지가 좋은 곳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아파트’가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은 총 3696가구의 백현마을 3·4단지는 도로 및 기반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지만 1년 5개월째 빈집 신세다.

이 아파트가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아파트’가 된 까닭은 성남 재개발 구역 주민들의 이주를 목적으로 마련한 이주용 주택이기 때문이다.

◆ 전세난 난리통인데 1년 5개월째 ‘유령 아파트’

이 곳에 사는 주민들은 비어 있는 아파트를 통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백현동 주민 장 모(33)씨는 “겨우내 전세난이라고 난리가 났고, 판교신도시는 특히 입주 2년째라 전세금이 1억~2억원이 올랐는데 저런 새 아파트를 1년 넘게 비워놓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판교신도시 삼평동의 E 공인중개업소 신 모씨도 “새 아파트인데 아무도 안 사는 것 같으니 빈집인 줄 알고 간혹 백현마을 3·4단지에 매물이 있는지 물어본다”고 말했다.

LH가 성남시 재개발 사업 때문에 미리 지어놨다가 현재 비어 있는 순환용 임대주택은 백현마을 3·4단지(3696가구)와 봇들마을 6단지(1297가구) 등이다. 이 중 봇들마을 6단지는 정부가 전세난 대책으로 올 초 부랴부랴 국민임대 아파트로 전환해 일반에게 공급했다.

전세난 광풍이 분 시점이라 6000여명이 넘는 청약이 몰렸다. 총 1297가구에 6048명이 몰리면서 약 5대 1의 경쟁률로 1순위 공급이 마감됐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도 “판교신도시가 입주한 지 2년이 되면서 전세금이 크게 올랐다”며 “상대적으로 보증금과 임대료가 저렴한 국민임대가 큰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현마을 3·4단지 3696가구는 내내 빈집으로 남아 있다.

백현마을 3·4단지는 재개발 추진이 무산되거나, 재개발 지역민이 이주하기 전까지는 비워 둘 수밖에 없다는게 LH측의 설명이다. LH 판교사업본부 관계자는 “빈 아파트로 있은 지 1년 6개월이 다 된 시점이라 더 놔두기엔 손실이 커서 최대한 주민 이주를 서두르고자 한다”며 “다만 재개발이 확정도 안 된 상태여서 잠정적으로 올해 말에 입주하는 것을 기대해 볼 뿐”이라고 답했다.

판교신도시를 내려다 본 항공사진.

◆ 인근 상가는 울상 “가게 열고 있는 게 손해에요”

비어 있는 유령 아파트 때문에 인근 주민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아파트 때문에 밤이 되면 이 지역이 우범지대처럼 변한다고 입을 모았다. 백현마을 입주민 김 모(38)씨는 “밤에는 3000가구가 넘는 아파트 단지가 암흑으로 변한다”며 “이곳이 판교 신도시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작년 7월에 완공돼 상가 입주가 진행 중인 백현마을 3·4단지 옆 J플라자의 상인들은 이 아파트 입주가 무기한 미뤄지면서 생각지 않은 손해를 보고 있다.

이곳에 작년 10월경 입점한 한 건강식품 판매점은 바로 옆 서판교 판매점보다 실적이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판매점 매니저는 “본사 직영이어서 판매 실적이 매일 비교가 되는데, 같은 규모의 서판교 지점보다 실적이 나빠 매일 불안의 연속”이라며 “어제는 매장 앞을 지나는 사람이 온 종일 5명도 안 됐고, 매장에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상가 분양업체 관계자도 “백현마을의 입주가 늦어지면서 이미 분양을 받았거나, 임대를 들어온 사람이 해약을 요구하거나 소송까지 진행 중인 것도 있어서 분양하는 입장에서도 큰 손해”라고 말했다.

상황은 이렇지만, 이 아파트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유령아파트’로 남을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성남시 재개발 사업이 어떤 방식으로든 결론이 나야 하기 때문이다.

LH 도시재생사업처 관계자는 “재개발이 이뤄진다고 해도 성남 재개발 지역에서 이주민이 빠른 시기 내 백현마을 3·4단지로 이주하기는 쉽지 않다”며 “재개발 지역인 만큼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문제가 얽혀 있어 입주 시기는 언제가 될 지 모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