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반대, 반대합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최근 주주총회장에서 반대 목소리를 부쩍 높이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11일과 18일 열린 현대자동차현대제철 정기주주총회에서 정몽구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건에 대해 연달아 반대표를 던졌다. 한화 김승연 회장, CJ오쇼핑 이재현 회장, SK 최태원 회장의 이사 선임 건에 대해서도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세부 기준에 기업가치의 훼손 또는 주주 권익 침해의 이력이 있는 자 등에 대해 이사 선임에 반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법원이 정몽구 회장에 대해 계열사 유상증자 등 경영상 불법행위에 책임을 지고 회사에 수백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점을 고려해 반대표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신용선 기자 ysshin@chosun.com

국민연금은 애플, MS 등 외국 기업에 대해서도 사상 최초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국민연금은 재무적 투자자의 위치에 만족하며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국민의 재산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국민연금이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경영진의 전횡이나 모럴해저드를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이런 태도 변화는 장차 우리 자본시장에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 지주회사 국민연금

국민연금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주식 보유액은 2000년 2조원에 불과했지만, 10년 만에 54조원으로 27배가량 늘어났다. 기금의 기하급수적 성장과 함께 국민연금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주식 투자 비중을 계속 늘려왔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채권 대비 주식 투자 비중은 2000년 10분의 1에 불과했지만, 2010년에는 3분의 1까지 높아졌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이 주식을 5% 이상 가지고 있는 상장기업이 2006년 79개사에서 현재는 150여 개사로 늘어났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중에서 현대차, POSCO, 현대모비스, LG화학, 신한지주, KB금융 등 6개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다. POSCO, KB금융, 하이닉스, KT의 네 곳은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삼성그룹 계열 상장사 지분의 5.5%를 국민연금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국민연금에 대해'대한민국 지주회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해 8.1%의 안건에 반대표 던져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330조원인 국민연금 기금은 5년 후 500조원, 10년 후 100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지금과 같은 국내 주식 비중(18%)만 유지한다고 해도 앞으로 10년간 130조원어치 이상의 주식을 더 사들여야 한다.

국민연금은 2005년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와 '의결권 행사지침'을 만들어 주식을 1% 이상 보유한 기업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의결권 행사에 나섰다. 이때부터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안건 수와 반대 비율 수는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2005년엔 의결에 참여한 안건 중 2.7%에 대해서만 반대표를 던졌지만, 작년엔 8.1%의 안건에 반대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민연금의 의결권이 캐스팅 보트(casting vote) 역할을 한 사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지난 2006년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KT&G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할 당시 백기사로 나서 경영권 방어를 도운 것이나, 2007년과 2009년 동아제약과 한단정보통신(현 우전앤한단)의 경영권 분쟁 때 의결권을 행사해 의사를 관철시킨 정도이다.

정부 입김 우려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아직까지는 큰 이슈가 아니었지만, 장차 핫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뚜렷한 주인이 없고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은행의 경우엔 국민연금이 나서서 지배구조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냐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국민연금이 최근 KB금융지주 주식 5.8%를 확보해 최대 주주가 된 것은 이런 의미에서 주목할만한 사건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원종욱 연구원은 "국민연금이 기업지배구조 문제 외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자칫 관치(官治)의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사실상 국유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재벌 기업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문제를 공론화해서 투명하고 공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경우에도 정부의 입김을 막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