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H중개사무소. 주상복합 빌딩 1층에 있는 중개업소의 유리창에는 20여개의 매물 안내판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 중에 전세물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보증금 1억원/월세 100만원'과 같이 반(半)전세 즉 '보증부월세'가 대부분이었다. L사장은 "예전에는 전세 물건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 집주인들은 대부분 월세 세입자만 찾는다"고 말했다.

반세기 이상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큰 축(軸)을 이뤘던, 해외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임대차제도인 전세(傳貰)는 과연 사라질까. 전문가들은 5년, 10년 안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서서히 줄어들다가 결국은 소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 정책이 아니라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탄생한 제도여서 그 시기도 '결국 시장이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박은철 부연구위원은 "주택 소유형태 기준으로 자가 비중은 올해 47%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예상된다"면서 "전세는 28%에서 27%로 줄고, 월세는 25%에서 26%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2020년이 되면 월세 비중이 전세의 2배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주택임대차 시장에서 전세가 유명무실해지며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어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집값 하락·저금리·고령화 사회가 월세로 이끌어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전세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돈을 구하기가 어렵기에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목돈 마련의 수단으로 삼았다. 세입자 역시 싼 비용으로 집 한 채를 장기간, 안심하고 빌려 사용할 수 있고, 내 집 마련의 종잣돈(seed money)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만이 있을 수 없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예금과 대출 간 금리 차가 8~9% 정도로 돈이 귀했던 지난날에는 집주인들은 전세금을 활용해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할 수 있었다"면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집값의 30~40%를 차지하는 전세금 덕분에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 집값 급락을 막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집값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매매를 통한 시세차익을 얻기 어려워지고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임대방식이 전세에서 월세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건국대 부동산도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주택가격 상승률(-1.1~3.3%)은 과거 25년(1987~2011년)간의 상승률의 평균치(연평균 4.1%)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지점장은 "전세금 2억~3억원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워 은행 이자보다 2~3%포인트 높은 월세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고령화 사회와 함께 1955~63년에 태어난 '베이비 부머(baby boomer)'의 은퇴가 시작되고 1~2인 가구가 증가하는 인구구조의 변화 역시 월세로의 전환을 촉진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2018년 4934만명 이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1~2인 가구는 2030년 52%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서울시 인구는 이미 1990년 1059만명에서 2005년 976만명으로 줄었으나 1인 가구 비율은 20.4%로 늘었다. 최성호 미래에셋부동산연구소 실장은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으로 가진 임대인이 은퇴하면서 소득이 줄어들 경우 정기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월세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