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맥주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수입 맥주가 국내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으며, 국내 맥주의 1위와 2위 브랜드도 최근 바뀌었다. 맥주 제조업체의 허가 기준이 완화돼 하이트맥주오비맥주의 양강(兩强)체제를 깰 새로운 업체가 진입할 가능성도 열려 있는 상황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수입량은 4만8713t으로 전년의 4만1492t에 비해 17% 증가했다. 2005년에는 2만2828t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5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대형마트의 수입 맥주 판매량은 더 빠르게 늘고 있다. 이마트 전 점에서 팔린 맥주 중에서 수입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상반기 14.2%에서 꾸준히 늘어, 올해 3월 한 달 동안은 21.7%를 차지했다. 이마트는 "수입 맥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호감도가 매우 높다"며 "국산 맥주보다 2~3배 비싼데도 판매량 증가 속도는 국산 맥주를 완전히 압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시장 점유율은 높지 않다. 국내 맥주회사들은 수입 맥주의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2% 수준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수입 회사들은 "5%까지 올라왔다"고 추정한다. 술집을 제외한 대형마트와 소매점만 따지면 이미 20%에 육박했다는 추정도 있다.

수입 맥주의 약진은 국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의 경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비맥주의 카스는 지난 1월 17년 동안 국내 맥주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해온 하이트맥주의 하이트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5개 하위 브랜드를 포함한 실적이지만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두 회사의 다양화 전략 차이 때문에 생긴 변화다. 두 회사는 모두 수입 맥주에 눈을 돌리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잡기 위해 맥주를 다양화했다.

"국내 맥주가 다른 나라 맥주에 비해 맛이 없다", "맛이 거의 없다"는 비판이 일고 실제로 수입 맥주가 잘 팔리기 시작하자, 두 회사는 모두 새 제품을 내놨다.

하이트맥주는 '하이트'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아예 다른 브랜드를 내놨다. 2007년에 약간 거친 맛을 가진 '맥스', 작년엔 단맛을 뺀 '드라이피니시D'라는 브랜드를 낸 것이다. 이에 따라 역량이 분산됐고, 상대적으로 하이트의 판매량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오비맥주도 2007년부터 다양화를 시도했는데, 전략이 하이트맥주와 약간 달랐다. 카스의 하위 브랜드로 새 맥주를 낸 것이다. 회사별 시장 점유율에서는 하이트맥주가 1위인데도, 브랜드 순위가 바뀐 이유다.

정부 정책으로 봐도 맥주 시장의 변화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올 1월부터 주세법 시행령이 개정돼, 맥주사업을 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이 완화됐다. 이전에는 500mL 370만병을 만들 수 있는 공장을 갖고 있어야만 맥주를 만들어 팔 수 있었으나, 이 기준이 20만병으로 대폭 완화됐다. 새로운 업체가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수입 맥주의 경우는 올 7월 발효될 것으로 보이는 한·EU FTA가 판매량을 늘리는 요인이 된다. 현재 30%인 관세가 단계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에, 수입 맥주의 가격이 떨어지는 요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