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 기자

대통령의 말마따나 '묘한 기름값'이다. 기름값 자체도 묘하지만, 기름값만 다루면 공무원들도 묘해진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최근 한 포럼에서 "정유사들이 벌어들인 돈에 걸맞게 성의 표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이나 설탕업계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정부의 물가안정정책에 협조하는데 정유사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로, 사실상 "알아서 가격을 낮추라"는 뜻이다.

올해 초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기관이라고 천명했을 때보다 한 발 더 나갔다. 공정위는 담합이라는 '꺼리'라도 만들어냈지만, 최 장관의 발언은 그냥 가격을 낮추라는 협박 수준이다.

지식경제부는 국내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처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정해지는 시장가격을 정부가 나서서 무조건 낮추라는 건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일이다. 더군다나 최 장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시장경제주의자다. 경제학 박사에 회계사 경력까지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서는 "현실성 없다"며 시장경제를 운운하더니 기름값을 대하자 180도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으로 시작된 정부 합동 석유가격 조사가 끝났다. 석유가격 TF는 지난 11일 최종 회의를 끝으로 조사를 마치고 이번 주 결과 발표만 앞두고 있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기름값의 비밀을 파헤치겠다던 각오는 사라졌고, 발표할 만한 내용이 마땅치 않다며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카드수수료 인하나 유류세 인하 같은 문제들도 부처 간 이견으로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의견이 많다. TF에 참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아직 장관이 발표할지 실장급에서 발표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장관이 발표하려면 그만한 결과물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며 난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대통령 지시로 몇 달에 걸쳐 조사를 진행한 이상 뭔가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는 공무원들의 조급한 마음은 이해가 간다. 상명하복의 대한민국 공무원 사회에서 대통령 지시에도 불구하고 "별 것 없다"는 대답은 통하지 않을 터다.

그렇다고 발표를 위해 억지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행동이 용납받을 수는 없다.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심판해야 할 정부가 시장에 뛰어들어 공을 이리저리 차기 시작한다면 언젠가는 운동장에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미 기업들은 정부의 가격 압박에 남몰래 불평을 쏟아내고 있다. 올해 들어 국제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동결한 LPG 업계는 지난 두달 동안 1년치 순이익만큼의 손해를 입었다. 정유업계 사람들도 세금이 반인 기름값에서 정유사들이 빼돌릴 돈이 어딨냐며 기자를 만날 때마다도 하소연한다.

조사를 통해 확실한 문제를 발견했다면 발표하고 개선하면 될 일이다. 조사결과는 뒤에 숨겨둔 채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정부의 속내가 궁금하다. 몇 달에 걸쳐 조사까지 했는데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이렇게 말만 앞세우는 거라면 정말 묘한 공무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