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LIG건설서울 동작구 '이수역 리가'를 분양받은 김모씨는 23일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LIG건설이 대신 납부했던 중도금 대출이자를 이달부터 김씨가 직접 내야 한다고 거래 은행이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계약 당시 LIG건설은 중도금 이자를 대신 먼저 내주는 '이자 후불제'를 약속했으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를 신청하면서 이자 납부를 거부한 것. 김씨는 "LIG라는 그룹 이미지 때문에 다른 건설사보다 튼튼하다고 믿고 분양받았는데 사기당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LIG건설의 모그룹인 LIG를 둘러싼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LIG는 LIG건설의 자금 조달과 아파트 분양 때는 모그룹 브랜드를 내세웠다가, 회사 경영이 부실해지자 곧장 '꼬리 자르기'식으로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룹이라는 '울타리'를 믿고 돈을 빌려준 금융권과 아파트 계약자만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남의 돈으로 회사 인수하고 사업자금 충당

LIG건설 최대주주는 주식의 59.16%를 소유한 TAS라는 회사다. 원래 LIG그룹 계열사의 손해사정 서비스와 콜센터 대행업체로 설립됐으나 LIG건설 인수 이후 건설의 지주회사 역할을 해왔다. LIG그룹 창업주 2세인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과 구본엽 LIG건설 부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TAS의 자본금은 1억1100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TAS는 2006년에 건영(인수가 2870억원)을 인수해 LIG건영으로 이름을 바꿨고, 이어 2009년 한보건설(302억원)을 인수해 LIG건영으로 합병하면서 현 LIG건설로 탈바꿈시켰다. 인수자금은 국민은행우리은행, 넥스젠캐피탈에서 4000여억원을 빌렸다. 이때 LIG손해보험 주식과 일부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했다.

LIG건설은 주로 금융권 돈을 빌려 사업했다. 해외부동산 개발과 아파트 사업에 적극 뛰어드는가 하면 토목사업을 강화한다며 한보건설까지 사들였다. 시중은행·저축은행 등을 통해 신용대출과 PF(Project Financing) 등 1조원대 대출을 일으켰다.

그러나 LIG건설 채무에 대해 LIG그룹이 부담해야 할 금전적 책임은 극히 제한적이다. 일부 채무에 대해 오너 일가가 소유한 LIG손해보험 주식이 담보로 설정돼 있지만 대부분 사업자금은 은행대출로 마련했기 때문이다.

건설사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LIG그룹은 그룹 전체의 건전성에 타격을 주지 않기 위해 이번처럼 법정관리신청을 통해 선을 긋는 모습도 보인다. 대개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은 채권단과 협의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먼저 추진하고, 실패하면 법원으로 간다. 그러나 LIG건설은 그룹에 재무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사회에서 지원안이 부결되자, 곧바로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그뿐 아니라 LIG건설은 이 과정에서 채권단과 협의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 나빠지자 곧바로 '꼬리 자르는' 그룹

2007~08년 건설경기가 활황일 때 건설 계열사를 뒀다가 주택경기 침체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재빨리 '꼬리 자르기'에 나서는 그룹은 LIG뿐이 아니다.

2008년 효성에 인수된 진흥기업은 지난 2월 1차 부도가 난 이후 가까스로 최종 부도는 면했지만 정상화 여부는 불투명하다. 효성이 진흥기업을 인수한 뒤 3년간 2400억여원을 지원했지만 연 이자비용만 600억원인 진흥기업 부채를 계속 떠안고 가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2008년 대한전선의 계열사로 편입된 남광토건도 2010년 6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상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건설업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막연히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업종 확장에 나선 그룹들이 건설 경기가 나빠지자 손실 줄이기에만 급급해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모그룹을 믿고 건설사 유동성을 지원했던 채권단들로서는 여신 평가 기준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