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에 사는 이영욱(가명·42)씨는 지난 1월 말 인터넷TV(IPTV) 서비스에 가입했다. 아파트 담벼락에 붙어 있는 전단을 보고 전화 한 통 했더니 그날로 당장 직원이 집으로 달려왔다. TV 수신장치(셋톱박스)를 설치하러 온 직원은 "3개월간은 시청료가 공짜이고, 이 기간에 해지해도 불이익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20일가량 IPTV를 보다가 아이들 공부에 방해되는 것 같아 해지를 신청했다. 그러자 업체에서는 "약정기간이 끝나기 전에 해지하면 설치비 2만원에 시청료까지 내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가입할 때 했던 말과 다르지 않으냐"고 항의했지만 결국 2만9000원의 위약금을 물고 서비스를 해지했다.

한국소비자원과 광역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는 "통신사 서비스 해지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 불만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접수된다. 소비자들은 무엇을 불편하게 느끼는 걸까?

통신 서비스 가입 때는 달콤한 유혹, 해지할 때는 위약금 폭탄

소비자들이 가장 큰 불만을 갖는 부분은 '위약금'이다.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등 통신사들은 일정 기간 동안 초고속인터넷·IPTV 등을 사용하겠다고 약정하면 그 기간 동안 요금을 할인해준다. 할인 금액을 미리 현금으로 주기도 한다. 업체 상담원들은 무차별적으로 전화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내 '초고속 인터넷 가입하면 현금 60만원' 같은 판촉을 실시하고 있다. 언뜻 보면 달콤한 유혹 같지만 그 안에는 '독(毒)'이 숨어 있다. 정해진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해지하면 할인받은 요금 이상으로 위약금을 내야 한다. 소비자가 해지 신청을 하면 업체들은 "해지하지 말고 더 쓰시면 요금을 추가 할인해주겠다"고 유혹한다. 굳이 해지하겠다고 하면 그때는 '위약금' '약정할인반환금' '가입설치비' 등의 명목으로 할인 금액을 일시에 내도록 한다.

해지 신청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서울 신당동에 사는 정모(33)씨는 지난해 말 초고속 인터넷을 해지하려고 통신사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정씨는 "가입 신청할 때는 금방 전화를 받더니 해지 메뉴를 누르자 상담원을 연결할 때까지 10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가입은 인터넷·전화통화를 통해 초고속으로 이뤄지지만 해지는 초저속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해지 절차 복잡하고, 자동으로 계약 연장하기도

통신사들은 "인터넷으로도 편리하게 해지 신청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도 전화 연결 못지않게 어렵다. 먼저 통신사 홈페이지 구석에 숨어 있는 해지 메뉴를 찾아서 신청을 해야 한다. 가입자 본인 대신 다른 가족이 신청할 경우 가입자 신분증, 인감증명서, 인감도장이 찍힌 위임장, 대리인 신분증 등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서류 준비를 마친 다음에는 통신사 대리점을 찾아가거나 팩스로 서류를 보내야 한다.

약정기간이 끝났는데도 가입자 모르게 슬그머니 계약을 자동 연장하는 경우도 있다. 주부 백지영씨는 지난 설 연휴에 집에서 쓰는 인터넷 연결이 끊겼다. 수리 신청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백씨는 '약정기간이 다 돼서 끊겼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휴가 지나 해지하려 보니 인터넷 사용 계약이 자동으로 연장돼 있었다. 백씨는 고장 나서 쓰지 못한 기간의 요금까지 낸 후에야 겨우 해지할 수 있었다.

통신사들은 "까다로운 해지 절차는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한 장치"라고 항변한다. 통신사 관계자는 "이혼 직전의 부인이 남편을 괴롭히기 위해 전화 해지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절차가 복잡한 것은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