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부산 대한항공 비행기 정비창. '테크센터(Tech-center)'라고 불리는 정비창의 한 격납고에는 6대의 미(美) 군용기가 겉옷을 벗고 내부를 훤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날아온 F-15 전투기는 동체 내부에 들어 있는 1만6000개 가닥의 전선 교체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명 탱크킬러라 불리는 'A-10A' 공격기를 기능이 향상된 'A-10C'로 개조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4개월간의 작업이 끝나면 이 전투기는 업그레이드된 전자 방어시스템은 물론 위치 추적장치를 갖춘 유도폭탄 등 고성능 무기를 탑재할 수 있게 된다.

부산에 있는 대한항공 테크센터에서 군용기들이 정비를 받고 있는 모습. 미 공군에서 사용하는 F-15 전투기(사진 위)와 미 해병대에서 사용하는 CH53 수송헬기. 기자는 ‘사진 촬영을 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고 이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날 대한항공 테크센터에서는 모두 60여대의 항공기가 정비를 받고 있었다. 오래된 여객기는 화물기로 변신했고, 낡은 여객기는 좌석 시트를 바꾸고 새 칠을 했다. 추락해서 50% 이상 파손된 헬기도 새 헬기로 탈바꿈했다. 이곳을 거쳐 가는 항공기는 한해 평균 200여대. 대한항공 관계자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정비사업은 다른 항공기 제작사업에 비해 수익성이 3~4배 이상 높은 알짜배기 사업"이라며 "앞으로는 중남미 항공기 정비시장 등 새로운 시장 개척에도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최고의 정비기지

재미있는 것은 정비 중인 항공기들이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비롯해 멀게는 미국 하와이·알래스카 기지 등에서 날아왔다는 것. 정비를 받기 위해 태평양을 건넜다는 말이다. 김종하 대한항공 상무는 "대한항공 테크센터가 품질·비용·납기일 준수 등 모든 면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 최고의 민·군 통합 정비창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비비용은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60~80% 수준이기 때문에 알래스카에서 부산까지 날아와 정비를 받아도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이 더해져 작년엔 미국 정비창에선 보통 110여일이 걸리는 작업을 부산 정비창에서는 56일 만에 끝내 미 국방부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50억달러, 무인 항공기시장을 잡아라"

테크센터의 또 다른 사업장에서는 무인(無人) 항공기 제작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사업장은 대한항공 직원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기밀 사업장. 대한항공 관계자는 "새로운 군용 무인기 개발사업을 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군사 기밀"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이 무인 항공기시장에 뛰어든 것은 높은 성장성 때문이다. 작년 시장 규모는 50억달러(약 5조7000억원)이며 앞으로도 매년 7% 이상 고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다. 미군도 2025년까지 전투기의 90%를 무인화하겠다고 밝혔다. 강완구 대한항공 기술연구원 부장은 "무인 항공기시장은 이제 막 성장기에 들었기 때문에 앞으로 시장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무인 항공기시장은 현재 미국·이스라엘·유럽 등 선진국 항공 제작사들이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2004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 2007년 산불·환경 감시 임무를 수행하는 KUS-7 근접무인항공기 개발에 성공했다. 강 부장은 "기존 항공기는 우리보다 수십년 앞서 있는 보잉이나 에어버스를 따라잡기 힘들지만 우리나라가 강점을 지닌 IT 기술이 대거 사용되는 무인 항공기는 해외 업체들과 충분히 경쟁해볼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