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2000억원을 들여 경기도 분당의 비싼 땅에 호화로운 대형 직업체험관을 짓고 있어 "일자리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 예산은 근로자들이 실직(失職)했을 때 찾아써야 할 고용보험기금에서 전액을 빼내 마련됐다. 고용보험기금은 2007년 이후 매년 적자를 내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여러 일자리를 경험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세워지는 직업체험관은 이미 일본이 2000년대 초반에 시도했다가 채산성이 맞지 않아 실패한 모델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일본의 모델을 그대로 본떠 이 사업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고용보험기금에서 빼낸 2000억원을 투자해 내년 3월 개관을 목표로 짓고 있는 직업체험관‘한국 잡월드’의 조감도.

'한국 잡월드'라는 이름의 이 직업체험관은 '분당 파크뷰' 맞은편 대지 2만5000여평에 연면적 1만2000여평의 초현대식 건물로 지어지고 있으며, 내년 3월 문을 열 예정이다. 고용노동부는 법인을 따로 설립해 직원 500명을 두고 이 시설을 운영할 계획이어서 "공무원들이 자기들 일자리를 늘리려고 공기업을 또 만든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산하 기관장은 "고용노동부 내에서는 벌써부터 누가 한국 잡월드 운영법인의 장(長)이 될지가 화제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후생노동성이 직업 체험관을 운영하는 법인을 만들면서 퇴직 관료들이 대거 낙하산으로 내려가 물의를 빚었다.

'한국 잡월드'에 투입되는 2000억원은 고용노동부의 2011년 일반 회계 예산 1조3700억원의 약 15%에 맞먹는 금액이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역점 사업인 청년취업인턴제 예산(1934억원)보다도 많다. 연봉 2000만원짜리 일자리 1만개를 만들 수 있는 돈이다.

고용노동부가 2000억원의 재원을 투입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 정자동에 짓고 있는 직업체험관‘한국 잡월드’의 공사 현장. 노무현 정부 때 세워진 계획대로 2009년 착공됐으며 운영법인 설립과 함께 내년 3월 문을 열 예정이다.

일본도 고용보험기금으로 직업체험관을 지었다가 "국민의 복지 재원을 낭비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일본의 재원 마련 방법까지 한국 정부가 따라 한 셈이다. 고용보험기금은 매달 근로자들 월급의 일부를 떼어내 만들어진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실업 급증으로 고용보험기금의 고갈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노동부가 시급하지도 않은 사업에 고용보험기금을 꺼내 쓰는 것은 도덕적 해이"라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도 "'한국 잡월드' 건립 예산은 일반회계에서 지출해야 한다"면서 "고용보험기금을 사용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한국 잡월드'에 은행원, 자동차 정비원, 경찰관, 펀드매니저, 의사, 수퍼마켓 계산원, 아나운서 등 66개 직업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들 직업 가운데는 청소년들이 평소 생활현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많이 포함돼 있다. 설립 계획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 발표됐고, 착공은 2009년 6월에 했다.

일본은 2003년 청소년들의 긍정적 직업관을 형성하겠다는 취지로 총 580억엔(약 7000억원)을 들여 '나의 직업관(私のしごと館)'이란 이름의 직업 체험관을 지었으나 방문자가 많지 않아 운영난을 겪다 7년 만인 지난해 3월 문을 닫았다. 연간 운영비가 24억엔(약 300억원)에 달했지만, 처음 추산했던 것보다 이용객이 턱없이 부족해 매년 10억~20억엔(130억~250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2008년 운영권을 민간에 넘겼으나 수지 개선이 되지 않아 결국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한국 잡월드'는 일본의 '나의 직업관'과 규모(1만600평)와 시설도 비슷하다. 장관을 비롯한 고용부(당시 노동부) 간부들이 2007~2008년 두 차례 '나의 직업관'을 견학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청소년들의 올바른 직업관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 시설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일본·독일·미국의 직업 체험관을 참조해 2004년부터 추진해 온 사업"이라며 "일본의 '나의 직업관'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 잡월드' 역시 연간 300억원 안팎의 운영비가 쓰일 전망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한국 잡월드 내에서 푸드코트와 카페 등 다양한 수익 사업을 벌여 운영비를 일부 충당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