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10년 4분기 가계신용' 자료에 따르면 가계대출과 카드사용, 외상구입을 포함하는 판매신용을 합한 가계빚 잔액이 80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2금융권을 포함한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작년 말 기준 600조원에 이르고 이 중 60% 이상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지난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더니 4분기에는 1997년 이후 분기별 최고 증가치를 보였다.

물론 가계빚의 대규모 부실화로 당장 한국 경제가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다소 무리가 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이기는 하지만 가계부채가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는 일본식 복합불황으로 가려면 실물자산 가격이 30% 이상 하락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가계의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비율이 증가하고 있고 채무상환 능력이 취약한 계층의 대출 비중은 2008년 이후 감소하는 추세이다. 작년 말 현재 국내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도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가계부채 문제는 단기에 해결하기 어렵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경우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는 폭탄으로 돌변할 소지가 크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계부채 문제는 세 가지 면에서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첫째, 부채의 절대적 크기보다 꾸준한 부채 증가 속도이다. 최근 5년간 가계부채 증가율은 57.3%에 이른다. 만약 금리상승과 주가조정이 진행되고, 부동산 경기침체가 지속될 경우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이 급격하게 악화될 수밖에 없다. 둘째, 소득증가율보다 높은 부채증가율이다. 2000~2009년 개인가처분소득은 연평균 5.7% 증가한 데 반해 가계부채는 연평균 11.6% 증가했다. 셋째,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일본·영국 등은 디레버리징(부채축소)에 주력하면서 가계부채가 조정국면에 진입한 데 반해 한국은 가계부채가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다.

가계부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향은 부채의 양이 급속하게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변동성을 줄이고 변제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증진과 부채증가 억제, 부동산시장의 안정, 부채 상환기간 연장 등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장기적으로 민간부문이 고용창출을 주도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부채 상환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득증가가 가장 근본적인 처방이지만 공공부문에 의한 단기적 고용창출은 지속적인 소득 증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음으로는 부동산 시장의 가격안정화를 통하여 예측할 수 있는 거래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점진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줄여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정책리스크를 줄임으로써 주택가격의 변동성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서민금융의 활성화는 장단점이 있으므로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오히려 가계부채 문제를 구조적으로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대출금 상환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부채 유동화 정책은 도덕적 해이로 인해 부실이 심화될 가능성도 내재하고 있으므로 금융당국의 각별한 주의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계(家計)는 자산구성에 있어 부동산보다 금융자산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고 자신의 소득과 자산 규모에 맞게 대출을 이용하는 등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요구된다. 결국 가계빚의 최종 책임은 각자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