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 인근에 10층짜리 사무용 빌딩을 소유한 김모(54)씨는 작년 가을부터 장기 임차인에게 입주 후 2~3개월은 임차료를 받지 않는다. 테헤란로와 강남역 주변에 있던 대기업이 일부 빠져나가면서 빈 사무실 채우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김씨는 "요즘엔 세입자에게 사무실 리모델링 공사비도 일부 지원해주고 있다"며 "서울에 새로 짓는 빌딩이 많아서 예전만큼 임대 놓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2~3년 전만 해도 사무실 구하기가 어려웠던 서울 시내 오피스 빌딩에 빈 사무실이 늘고 있다.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사무실 수요가 다시 늘고 있지만 새로 입주하는 대형 빌딩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종로·을지로 등 강북 도심권은 올해 말까지 신규 빌딩이 대거 완공될 예정이어서 '임차인 모시기' 전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빈 사무실 비율 14%대로 높아져

부동산 투자 자문회사인 교보리얼코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강북 도심권의 빌딩 공실률은 14%로 전달보다 7.67%포인트나 치솟았다. 임홍성 교보리얼코 투자자문팀장은 "도심권에는 작년 4분기에만 5개 빌딩이 새로 공급되면서 빈 사무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완공한 서울 종로구 인의동 C빌딩(연면적 4만5000여㎡)은 현재 대부분 사무실이 비어 있다. 중구 수하동의 M빌딩(연면적 16만㎡)과 P타워(연면적 5만5000여㎡) 등도 공실률이 50%를 넘는다. 인의동의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사무실을 구하는 수요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공급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강남과 여의도 역시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강남권 빌딩 공실률은 5.62%로 전달보다 2.72%포인트, 여의도는 3.34%로 0.01%포인트 각각 증가했다.

빈 사무실이 늘면서 빌딩 매매시장도 얼어붙고 있다. 종로구 청진동 2·3지구와 12·16지구 등에 새로 짓고 있는 업무용 빌딩은 지난해부터 건물 전체를 팔려고 내놨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세빌스코리아 관계자는 "대기업 사옥으로 쓰고 있는 빌딩은 공실이 적어 매매 수요가 풍부하다"면서도 "새로 짓는 빌딩은 임차인 구하기가 어려워 가격이 웬만큼 싸지 않으면 거래가 어렵다"고 말했다.

"당분간 약세… 중장기 전망은 밝아"

서울의 업무용 빌딩시장은 당분간 약세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황점상 쿠시먼앤웨이크필드 한국지사 대표는 "강남권과 여의도권은 올해 공급이 크게 늘지 않아 비교적 강세를 띠겠지만 강북 도심권은 공실 증가로 임대료와 매매가격이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국내 오피스시장 전망은 밝게 보고 있다. 경제 상황 개선으로 사무실 수요가 늘어나고 외국 기업의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 공급 과잉이 예상되면서 일부 신규 빌딩은 완공 시기를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