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석 기자

작년 한 해 큰 폭으로 올랐던 아시아 신흥국 증시가 올 들어 '고(高)물가'라는 암초에 부딪혀 하락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주가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세계 경제의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한 동남아 국가들 증시가 갑자기 부진해진 것은 각국 정부가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일제히 금리 인상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면 시중 자금이 예금 등에 몰리며 증시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주가에는 악재로 작용한다.

다만 증권 전문가들은 이런 동남아 증시의 하락세가 바로 한국 증시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경기 회복세 속에 한국 기업들의 이익이 올해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올 들어 물가 악재 만난 아시아 신흥국 증시

작년 46%나 올랐던 인도네시아 증시는 올 들어 지난 12일까지 4% 떨어졌다. 작년 17% 넘게 상승했던 인도 주가도 올 들어 4.8% 하락했다. 베트남(-1.3%), 태국(-1.3%), 필리핀(-3.9%), 대만(-0.1%) 역시 올 들어 약세다. 이에 반해 미국(1.5%), 영국(2.6%), 일본(2.8%), 독일(2.2%), 프랑스(3.7%) 등 선진국들은 연초 이후 주가가 오히려 오름세를 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에 넘치는 자금이 증시에는 '양날의 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선진국의 투자자금이 빠른 경제회복세를 보이는 아시아에 몰려들며 주가를 올려놓았지만, 또 이 자금이 물가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달 초 발표된 인도네시아의 12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7%를 기록, 정부 목표치인 4~6%를 넘어섰다. 인도 역시 식품도매물가지수가 작년보다 18.3%나 올라 4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정위기를 겪는 베트남의 경우 작년 11월 소비자물가가 전년보다 11%나 상승했다. 반면 미국의 지난해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1%에 그쳤고, 일본(0.1%), 독일(1.4%), 프랑스(1.6%) 등 다른 선진국들도 물가가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였다.

또 이상기후와 수요증가로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것도 신흥국 물가를 급속히 밀어올리고 있다. 특히 농산품 가격의 급등은 물가에서 식료품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동남아 신흥국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물가가 급등하면 신흥국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게 되고 시중 자금은 높은 금리를 찾아 증시에서 빠져나가 은행으로 몰린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생산비용이 올라가고 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단기자금이 몰려 환율이 하락해 수출경쟁력이 악화되면 주가에 악재다.

물가 급등으로 비상이 걸린 아시아 신흥국들은 일제히 금리 인상에 돌입했다. 지난 12일 태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최근 IMF(국제통화기금)는 작년 6차례 금리를 올린 인도에 대해 "물가 상승이 심각하기 때문에 금리를 추가 인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작년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대비)이 5.1%로 2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중국도 작년에 이어 올해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중국이 올해 3~4차례 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역시 13일 기준금리를 2.5%에서 2.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앞으로 금리 3차례 정도 추가 인상되면 한국 증시도 부담

다만 전문가들은 최근의 글로벌 물가 상승과 아시아 신흥국들의 금리 인상이 한국 증시에 당장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고 말한다. 동남아 신흥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물가 상승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뎠고, 환율 부문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에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13일에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코스피지수는 소폭(0.26%) 떨어지는 데 그쳤다.

한국은 여러 차례 금리를 올린 아시아 신흥국들과 달리 작년 금리를 2차례만 올렸다. 대부분 증권사는 올해 물가가 상승하더라도 기업이익 증가 등을 고려할 때 코스피지수가 2400~2500 정도까지는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추가로 3~4차례 정도 금리가 인상된다면 한국 증시도 부담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앞으로 3~4차례 정도 금리를 인상해 기준금리가 3% 중반 정도 되면 한국 증시에도 하락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정상화 속도에 따라 금리 인상도 빨라질 것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이에 맞춰 투자를 고려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금리 인상기엔 은행·보험 등 금융부문이 수혜를 볼 업종으로 꼽힌다.

◆아시아 신흥국 펀드는 신중, 원자재 관련 상품에 관심 가질 만

물가가 계속 상승하는 한 신흥국들은 금리 인상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농산품의 경우 북반구의 수확기간이 끝났지만 남반구의 수확이 2분기(4~6월) 이후에나 이뤄지면서 한동안은 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호주가 50년 만에 최악의 홍수를 겪으면서 각종 농산품과 광물 공급에 큰 차질이 생기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신흥국 펀드에 한 번에 많은 돈을 넣기보다 잠깐 투자를 쉬던지, 투자를 하더라도 나눠서 넣으라고 조언한다. 금리인상이 지속될 경우 주가가 추가하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허재환 대우증권 연구원은 "작년 한 해 아시아 신흥국 증시가 많이 올랐고, 물가불안 위험도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는 상반기엔 선진국으로 관심을 돌려볼 만하다"고 말했다.

또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브라질·러시아·캐나다 등 원자재 생산국이나 정유·제련 업종에 투자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임병효 삼성증권 연구원은 "원자재 생산국이 포함된 펀드나 SK에너지·풍산·고려아연 등 원자재를 가공해 판매하는 업종 등이 물가상승기에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