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식품에 이(異)물질이 발견됐다는 논란이 벌어져 소비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2008년 3월 '쥐머리 새우깡'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데 이어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23일엔 '식빵 안에서 쥐가 발견됐다'는 주장이 인터넷에서 제기돼 소비자들을 찜찜하게 만들었다.

반복해서 발생하는 식품 이물질 혼입 문제에 대해 소비자들은 물론이고, 식품업체들도 불만이 많다. 소비자들은 "큰 정신적 피해를 입더라도 별달리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고 불평하고, 식품업계는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없는 일을 꾸며내는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다"고 하소연한다. 소비자나 식품업체 모두 합리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대목에 불거진 '쥐 식빵' 논란

'쥐 식빵' 의혹은 베이커리 업체의 최대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둔 지난 23일 터져 나왔다. 이날 새벽 1시 46분쯤 '가르마'라는 아이디의 한 네티즌이 국내 최대 베이커리 체인 '파리바게뜨'의 식빵에서, 쥐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나왔다는 글과 사진을 인터넷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 올렸다. 특이한 것은 통상적인 이물질 사건 피해자들은 해당 업체에 먼저 신고·항의했으나 이번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공개하지도, 베이커리 업체에 항의하지도 않았다. 인터넷에만 글과 사진을 올렸을 뿐이다.

파리바게뜨가 소속된 SPC그룹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식빵 제조 과정에 쥐가 섞여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글을 올린 사람의 행적에 의문이 많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경찰 수사 결과, 글을 올린 사람은 해당 베이커리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경쟁업체 빵집 주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는 경찰에서 "쥐가 나온 것은 사실"이라고 계속 주장했다. 결국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이물질이 식빵에 들어간 경위를 조사 중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유사한 사건이 반복해서 터져 나왔지만 유야무야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2008년 3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쥐머리 새우깡'(생쥐머리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발견된 새우깡) 사건은 제품 회수와 생산 중단 명령이 내려졌지만, 식약청은 몇 개월 뒤 "혼입 경로를 밝히지 못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미미한 보상 규정, 소비자·업체 모두 불만

식품업계는 "논란이 되는 순간 진위에 관계없이 업체가 피해자가 되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터지면 무조건 막고 보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푸념한다. 소비자들의 주장은 다르다. 심각한 이물질이 나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도 제품만 교환해주면 된다는 업체들이 많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식료품에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부패·변질됐을 때 해당 업체는 해당 제품을 교환 또는 환불해주도록 하고 있다. 소비자가 신체상 피해를 입을 경우에는 치료비와 관련 경비 등을 보상해줘야 한다. 그러나 금전적인 보상 외에 형사처벌 등 별다른 제재는 가하지 않는 처벌 규정은 식품업체들이 다른 제품이나 상품권을 제공하는 수준에서 사건을 적당히 무마하는 대응을 하게 만든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제조물책임법이 엄격히 적용되고 있다. 사고에 대한 예방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기업들에 대해선 거액의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자발적으로 리콜 조치를 하거나 피해 보상에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오상석 이화여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식품 문제 발생 시 보상 기준을 제품 포장지 등에 미리 공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물질 혼입 논란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식약청·소비자보호원 등 정부 기관이 사건의 공개 여부부터 시작해 진상 조사, 보상 등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피해 소비자가 해당 식품업체에 직접 접촉해 금전적인 보상만 받고 그치면 근본적인 해결이 안 돼 같은 사건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블랙 컨슈머'가 중립적인 기관을 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인터넷 등에 '이물질 사건'을 허위로 제기할 경우, 해당 업체는 막대한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녹색소비자연대 이주홍 정책부장은 "업체에 대한 규제와 동시에 블랙 컨슈머의 일방적인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더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