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 프로게이머였던 김동신(31)씨는 2007년 9월 홍익대 근방의 오피스텔을 얻어 파프리카랩이라는 게임 벤처회사를 차렸다. 직원은 그와 친구 단 두 명. 하지만 눈은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향해 있었다.

파프리카랩은 창업 1년 반 만에 '이성을 사로잡는 당신의 지성 2000'이라는 아이폰용 무료게임으로 일본 앱스토어 전체 6위, 게임 부문 3위를 기록했다. 이어 출시한 페이스북용 게임 '해적의 유산(Pirate Legacy)'은 출시 직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15만명의 사용자를 끌어모았다. 창업한 지 3년이 채 안 돼 파프리카랩은 국내를 대표하는 소셜 게임(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온라인 인맥을 활용한 게임) 업체로 자리 잡았다.

(왼쪽부터)나노 신동우 사장, 사파이어테크놀로지 이희춘 사장, 다원시스 박선순 사장, 애니젠 김재일 사장, 파프리카랩 김동신 사장.

IT제품에 탑재되는 반도체 부품인 마이크로컨트롤러(MCU)를 생산하는 코아리버는 배종홍 대표를 비롯한 현 임직원 7명이 모두 집을 담보로 창업한 회사다. 이들은 창업 전 대기업의 팀장급 인재들이었다. 코아리버는 2005년 창업 첫해 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현재 월 300만개의 공급량을 유지하며 성장하고 있다.

2000년대 초 IT버블 이후 차갑게 식어있던 한국 벤처 산업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벤처기업 창업 숫자는 지난해 1만8893개에서 올해 2만3454개로 20%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와 민간을 통해 조성된 신규 벤처 투자 펀드 규모도 1조원을 넘어섰다.

새롭게 등장한 수많은 벤처업체 중 어떤 기업이 '승자(勝者)'가 되어 한국 벤처를 이끌어갈까. 중소기업진흥공단 산하 한국벤처투자와 국내 벤처캐피탈 업계가 지난 17일 선정한 20개 벤처기업이 어떤 능력과 잠재력을 갖췄는지 분석해보았다.

전자·화학·콘텐츠… 벤처가 뜬다

올해 약 280억원의 매출이 예상되는 나노는 전 세계에 3개밖에 없는 탈질 촉매(SCR·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오염된 공기를 깨끗하게 하는 장치) 제품 생산 업체다.

국내 화력 발전소는 나노가 탈질 촉매를 생산하기 전인 2005년까지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었다. 그러나 현재 나노는 국내 탈질 촉매 수요의 90%를 공급하고 있다.

또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전 세계 선박에 대해 2016년부터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80% 수준으로 줄이도록 규제하면서 약 5000억원 규모의 새로운 시장이 열려 성장 가능성을 주목받고 있다.

사파이어테크놀로지는 3년 만에 매출이 20배나 성장했다. 2007년 매출이 45억원이었지만 올해 예상 매출액은 900억원. 이 기업은 LED의 기초소재로 사용되는 공업용 사파이어를 생산하고 있다.

"내년엔 바이오가 유망"

이 밖에 다원시스·애니젠·뉴로바이오시스·리켐·비아트론·휴먼메디텍·캐프·디지큐브·아이텍반도체·우진·블루홀스튜디오·시뮬라인·코림·글로실·HEM KOREA 등이 유망 벤처로 꼽혔다.

IT 버블로 수그러들던 벤처 창업이 지난 2005년 이후 다시 살아난 것은 모태펀드(母胎펀드·결성되는 펀드에 자금을 공급해주는 펀드)의 힘이 크다. 현재 중소기업진흥공단뿐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특허청·영화진흥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자금을 내 5년간 약 1조2000억원 규모의 모태펀드를 조성했으며, 한국벤처투자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민간자금(벤처캐피탈)을 유치, 총 4조6000억원 규모의 160여개 벤처 펀드를 결성해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벤처캐피탈 업계 관계자들은 내년 가장 주목할 만한 산업으로 바이오 관련 산업을 꼽았다. 윤종연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는 "바이오산업은 그동안 투자한 금액에 비해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최근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사업진출로 관련 벤처들도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져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