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주식은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 어디가 무릎이고, 어디가 어깨인 줄 모른다. 발바닥과 상투는 다 지나간 다음에 알고, 그 후에야 무릎과 어깨의 실체가 드러난다.
많은 투자자들이 욕심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욕심이 언제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필자의 경험으로 욕심은 어깨 위에서 들먹이고, 공포는 무릎 아래서 후들거린다. 그래서 자신을 알면 시장을 간단히 알 수가 있다.
손자병법의 가르침을 보자. 나를 알고 돈을 알면 백전불태(百戰不殆 ; 백번을 싸워도 자신을 위태롭게 하지 않고) ,나를 모르고 돈을 알면 승패반반 (勝敗半半 ; 벌 수도 있고 손실을 볼 때도 있고), 나를 알고 돈을 모르면 포의도인 (布衣道人 ; 투자를 안하게 되고), 나도 모르고 돈도 모르면 매전필패(每戰必敗 ; 구하면 구할수록 멀어지고 벌려고 하면 할수록 손해만 봄) 한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 사회나 가정 혹은 학교에서 타인을 꾸중할 때 '네가 이럴 줄 몰랐다'라는 말을 쓰곤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런 꾸중을 듣는 사람들도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자신과 대상세계에 대해 무지하게 살아가고 있다.
원인은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계는 같은 공간이라도 사람이 인식하는 세계와 강아지나 곤충이 인식하는 세계가 전혀 다르다는데 있다. 우리는 돈이나 희망 혹은 사람 같은 대상세계를 인식할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감정이라는 거울에 비추어지는 그림자로서 인식한다.
쉽게 말해서 강에 떠 있는 달을 보고 달을 인식하는 것이지, 가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하늘의 달 그 자체를 인식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 것이 인간의 한계라고 할 것이다.
부동산이나 주식거래도 값이 올라간다고 믿는 사람은 사는 것이고, 내려간다고 믿는 사람은 팔기에 그 거래가 형성된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과연 믿을만한 것일까?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는 항상 변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나는 이러한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포기하기도 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열심히 살아가다가 지치기도 한다.
사람은 자연의 전부는 아니지만 자연의 일부다. 나무를 예로 들어 보자. 돌감나무는 아무리 열심히 가꾸고 물을 주고 정성을 기울여도 돌감나무일 뿐이다. 절대로 맛있는 단감나무가 되지 않는다. 돌감나무에서 단감을 얻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다. 바로 단감나무와 접을 붙이면 된다. 인간도 그러한 측면이 있다. 그것이 교육이고 인복(人福)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돈은 아무나 버나?" 하며 자신은 장사를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장사와 영업에 대한 자기 자신의 편견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사실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판다. 직장 상사한테도, 아내한테도, 부모한테도, 자녀한테도, 동료한테도 우리의 견해와 주장과 고집을 판다.
그런데 왜 나는 파는 일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자기 자신을 잘못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맹목적 의지의 삶을 사는 존재'로 살아간다. 실제로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본인들의 잠재능력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내가 무슨 수로 그런 단감나무를 만나서 원하는 단감을 얻는가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먼저 '나는 파는 것은 못한다', '나는 남한테 아쉬운 소리 못한다'라는 마음의 적을 물리쳐야 한다. 그것은 마음에 잘못 그려진 돌감나무의 그림일 뿐이다.
사실 매달 봉급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을 고용한 회사에 자신의 시간을 파는 것이다. 그 시간만큼 회사의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시간당 임금이라는 것이다. 시간당 임금은 본인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기질이나 순발력, 그리고 학력이나 네트워크, 혹은 기술과 만나온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지나온 날의 이력, 즉 인생의 질에 의해서 결정된다. 결국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파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삶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하루 중의 일정 시간을 파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들고 쉬는 시간에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과거 인생을 사러 온다면 어떨까?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지금까지는 몰랐던 자신의 다른 것을 팔게 된다면 어떨까? 핸드폰을 팔던 영국의 폴포츠가 음반을 팔듯이 말이다.
혹은 샐러리맨이 스마트폰에 앱을 만들어 파는 경우는? 가정주부가 자신의 양육과 교육경험을 근간으로 유료사이트를 만들어 돈을 받거나, 취미로 만든 공간에 입장료를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빌딩이나 상가도 없이 월세처럼 임대료 및 사용료를 받는 사람들이다.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그러한 사람들을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권리를 지닌 일종의 '봉건 영주'라고 보았다. 소박한 봉건 영주라는 의미로 '소봉'(素封)이라고 이름 짓기도 하였다. 여러분도 나도 소봉이 될 수 있다. 여러분도 팔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많이 가지고 있고, 그것을 통해 지속적인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를 모르기에 내가 가진 것, 나의 자산 상태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 탄소덩어리 같은 원석 상태의 당신을 가공해서 다이아몬드로 만드는 것, 그것이 '메이킹 머니'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