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동산 시장은 거의 바닥 단계에서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금리가 크게 오르거나 주택 가격이 다시 한 번 급락하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하나금융그룹의 조니 아지(Adji) 해외부동산 총괄 이사는 "현재 한국 부동산 시장은 1을 최저, 10을 최상으로 볼 때 2~5단계에 와 있다"며 "가격은 최고점일 때의 90% 수준이지만, 거래량은 30~40%에 불과해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글로벌 부동산 투자박람회를 주관하는 '시티스케이프'는 지난 22일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한국 부동산 시장의 최근 상황과 향후 전망을 주제로 2시간여에 걸친 깊이 있는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는 조니 아지, 조셉 창(Chiang) 리포인천개발 대표, 다니엘 그로버(Grover) 스카이랜 전무, 이상훈 국토해양부 국제협력담당관 등이 참석했다. 본지는 포럼 이후 이들과 개별 인터뷰를 가졌다.

(왼쪽부터) 조니 아지 하나금융그룹 해외부동산 총괄 이사 / 조셉 창 리포인천개발 대표

"규제 풀어 투자자에게 자신감 줘야"

홍콩계 대형 부동산업체인 리포그룹 계열사 리포인천개발을 이끄는 창 대표는 한국의 부동산 경기를 10단계로 나눌 때 최저점을 지나고 2단계쯤에 와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 한국 부동산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에겐 자신감이 부족하다"며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풀어 투자자에게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규제를 수시로 바꾸면 투자자들은 나중에 되팔 때를 걱정해 부동산을 선뜻 매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콘도를 예로 들었다. "과거엔 2명이 1계좌를 살 수 있었는데 5명이 돼야 1계좌를 살 수 있게 제도를 바꾸면 '나중에 어떻게 팔지'란 생각 때문에 투자를 안 하게 됩니다."

창 대표는 외국인 시각에서 보면 분양가 상한제도 시장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면 건설사들이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저렴한 아파트만 지으려고 하는데, 고급 아파트를 찾는 수요는 어떻게 채워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집값이 단기간에 오를 것이란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금리가 급등하거나 집값이 추가 하락하는 상황이 오면 자칫 투매(投賣)로 이어져 시장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는 경고도 이어졌다. 아지 이사는 "금융회사는 만기 3개월~1년의 단기 자금을 주로 빌려 20~30년의 장기로 부동산 대출을 해준다"며 "금리가 급격하게 움직이면 비싸게 돈을 빌려 싸게 빌려주는 상황이 벌어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30년짜리 장기 금융상품을 도입하기 위해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협조하는 방안도 고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도심 내 오피스는 공급 과잉"

용산·상암·잠실 등 서울 곳곳에서 10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 건립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서울의 도심 내 오피스 공급량은 현재 과잉 상태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아지 이사는 "내년에 중구나 종로구 등 도심에서 공급될 오피스는 연면적 기준으로 대략 60만~70만㎡인데, 이는 과거 10년간 연평균 오피스 수요인 30만㎡를 배 이상 웃도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특히 롯데그룹이 잠실에서 추진하는 '롯데수퍼타워'는 투자의 관점으로만 보면 사업성이 높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기업이 랜드마크 빌딩을 만든다는 측면으로 보면 의미가 있지만, 도심·여의도·강남 등 인기지역에서 떨어져 있어 투자 매력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창 대표도 "서울은 다국적 기업이 상주하는 홍콩·싱가포르·상하이보다 오피스 물량을 소화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오피스 빌딩은 연면적이 3만3000㎡(1만평) 이상인 A급 빌딩보다는 2만~3만㎡인 B급 빌딩이나 그보다 작은 C급 빌딩이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로버 전무는 "현재 오피스가 공급 과잉인 것은 맞지만, A급 빌딩은 공급이 많지 않다"며 "A급 빌딩은 공급이 많아도 B·C급 빌딩의 임차인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B·C급 빌딩에서 임차인을 못 구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분양 위주 사업방식 뜯어고쳐야"

이날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현재 한국의 부동산 개발방식은 잘못됐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에는 진정한 개발업자가 없다는 따끔한 지적도 있었다.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장기적인 계획 없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분양에만 몰두한다는 것이다.

이상훈 국제협력담당관은 "'개발'은 계획을 세워서 자금을 조달하고, 도시를 완성하고 나서도 도시가 자생력을 갖도록 관리까지 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국내 개발사업 대부분은 빠른 기간 안에 공사를 마치고 분양을 통해 수익을 뽑으려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나 판교신도시의 알파돔시티가 자금조달 문제로 차질을 빚는 이유도 세계적인 금융위기 외에 단기 분양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땅을 비싸게 사도 아파트나 상가를 더 비싸게 팔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문제가 벌어졌다는 지적이다.

창 대표는 "건설사는 빨리 건물을 짓고 떠나기를 원하는데, 용산의 경우 중간에서 여러 투자자의 역할을 조정하고 수요 조사를 충실하게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굉장히 성공적인 사업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지 이사는 "아파트가 잘 팔릴 것 같을 때는 아파트만 분양하고 오피스가 좋을 때는 오피스만 내놓다 보니 금융위기 등 외부 변수가 생기면 시장이 크게 충격을 받는다"며 "전체적인 수요와 공급을 통제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시를 계획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분양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주택 사업에만 몰린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로버 전무는 "주택은 오피스나 상가, 호텔과 비교했을 때 아주 쉬운 사업영역이라 업체끼리 경쟁이 치열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