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대치동 소프트웨어(SW) 발전센터 4층에 위치한 불법SW 단속업체 케이스카이비. 케이스카이비 사무실 구석에 있는 10평 규모 방에 들어서니 PC화면 속에 나타난 데이터를 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의견을 나누는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의 PC 화면에는 AP(Anti-Piracy·반해적) 시스템이라는 프로그램이 띄워져 있었다. 케이스카이비가 자체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각종 웹하드·P2P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불법 SW 정보를 주 2회 수집한다. 이날 'BOMUXXXX'라는 한 사이트에서 찾은 불법 SW는 총 65건. '한글 2007' '어도비 포토샵' 'MS 오피스 2007' 등 이름만 들으면 아는 유명 SW 들이 불법 SW 리스트에 줄을 이었다. 동행한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의 김태익 정보지원팀장은 "주말 동안 올라온 불법 SW가 쌓인 월요일에 단속 프로그램을 돌리면 하루에만 800~900건 정도가 적발된다"면서 "요즘엔 이름 검색에 걸리지 않기 위해 파일명을 바꾸는 악덕업자들 때문에 단속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웹하드·P2P 운영업자들은 월정액 유료회원제로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유저들이 불법 SW로 내려받게 유혹하고 있다. 이들이 키운 국내 불법 SW 온라인 다운로드 시장규모만 올 한해(10월까지) 2369억원에 달한다. 2006년(670억원)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었다.
◆불법복제에 SW산업이 죽어간다…일자리·지원 학생수 줄어
지난해 국내에 보급된 SW 중 불법 복제품은 41%에 달했다. 피해금액만 5억7500만달러(약 6400억원). OECD 회원국 평균 불법 SW 사용비율(36%)보다 높은 수치이며, OECD 33개 회원국 중 불법복제품 이용률이 22위다. 미국(20%)·일본(21%)·영국(27%)·독일(28%) 등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의 불법 SW 비중은 10% 이상 높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국내에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이 10% 감소할 경우 1만229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고 한다. 또 2년 내에 불법복제율을 10% 감소시킬 경우 약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의 GDP(국내총생산) 증가 효과도 일어난다고 IDC는 분석했다. 고건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불법 SW가 한국 경제와 SW 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SW 산업이 죽어가니 국내 상위권 대학의 SW 관련학과 지원자가 10년 전에 비해 4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력이 생명인 SW산업이 국내에서는 뿌리조차 내리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불법 SW 때문에 우리의 IT산업 경쟁력도 뒷걸음치고 있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세계 주요 국가 IT 경쟁력 지수 평가에서 한국은 2007년 3위를 하다 2008년 8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작년에는 16위로 추락했다. 여기에는 불법 SW가 한몫을 했다. 한국은 지식재산 보호가 얼마나 잘 이뤄지느냐를 평가하는 법률 및 규정 항목에서 선진국(80~90점)보다 낮은 67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단속해야 할 정부도 불법 SW 사용
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을 포함한 공공기관이 불법복제 SW를 사용하다 적발된 건수가 지난 2008년 736건에서 작년 1862건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는 적발건수가 8월 말까지만 2600건에 달하고 있다. 일례로 관세청의 경우 지난해 설치된 SW 1646개 중 15.4%(254개)가 불법 SW로 조사됐으며, SW산업 육성을 담당하고 있는 지식경제부도 2251개 중에서 4.4%(99개)가 불법 SW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경 창조한국당 의원은 "공공기관의 불법복제 SW 사용 급증은 충격적"이라며 "정부부터 나서서 정품 SW를 구매하고 관리하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군(軍)의 경우 정품 SW 사용이 더 저조하다. 약 20만대의 PC를 보유한 우리 군의 SW 구매비용은 39억원에 불과, PC당 SW 사용비용이 2만원이 채 안 됐다.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은 "호주·영국·싱가포르·이스라엘의 경우, 군에서 PC당 구매한 SW 비용은 평균 48만원"이라며 "우리는 24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불법 SW 단속인력도 태부족이다. 지난 2008년 7월 옛 정보통신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로 SW 불법복제 단속업무가 넘어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단속인력은 59명에서 32명으로 축소됐다. 단속인력이 줄어드니 불법 SW 적발건수도 2008년 1446건에서 작년 626건으로 크게 줄었다. 조기철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보호과장은 "서울·부산·대전·광주 등 4개 지역에 배치된 32명의 인력은 SW 단속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영화·게임 등의 단속업무에도 투입된다"며 "예산 등의 문제로 단속인력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사이버테러 위험 노출 증가
불법 SW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난해 7월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사태와 같은 사이버테러 공격을 받았을 때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다. 불법 SW는 정품과 달리 정기적인 보안 기능 업데이트가 안 되기 때문이다. 안철수연구소의 김홍선 사장은 "검증이 안 된 프로그램을 내려받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PC가 좀비PC(해커가 유포한 악성코드에 감염된 PC)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불법 SW를 쓰다가 해커의 공격에 뚫려 개인정보가 새어나갈 수 있으며, 정부나 국가기관의 경우 국가기밀이 불법 SW를 통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
하지만 불법 SW를 뿌리 뽑는 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 하드웨어와 달리 SW는 PC에 설치돼 있는 무형의 재산이기 때문에 수많은 불법 프로그램을 일일이 잡아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SW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도 범(凡)정부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윤선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능적인 업자는 소프트웨어 안의 코드 몇개를 바꿔 판매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원본과 프로그램이 달라져 처벌이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그는 또 "현재 불법 SW를 비영리로 사용할 경우 법적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나 기업들은 비영리라도 불법 SW를 쓰지 못하게 하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