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자금 조성 의혹 등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는 한화그룹과 태광그룹, 그리고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은 롯데 그룹은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 1월 붙잡힌 도굴범 정모(48)씨에게 창업주나 조상의 묘를 도굴당한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세 그룹 모두 올 하반기 들어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서울 서부지검은 한화 그룹과 태광 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에 나서며 그룹 본사와 계열사를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했다.
앞서 국세청은 지난 9월부터 롯데건설 등을 비롯한 계열사에 인력 40여명을 투입해 대대적인 특별세무조사를 벌였다. 이 같은 재계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은 이명박 대통령이 하반기 국정과제로 내세운 '공정사회' 기조와 관련된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정씨에 의해 조상의 묘를 도굴당한 기업들이 모두 사정대상에 오르면서 도굴범 정씨가 다시 화제에 올랐다.
경북경찰청은 지난 1월 경북 포항에 있는 태광그룹 창업자인 고 이임용 전 회장의 묘지를 도굴해 유골을 훔친 혐의로 정씨를 붙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상습적으로 대기업 창업주의 묘지를 파헤쳐 유골을 훔친 뒤 이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거액을 요구한 혐의를 받았다. 정씨는 태광 그룹 측에 유골을 돌려주는 대가로 10억원을 요구했다.
수사에 나섰던 경찰은 과거 정씨가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다는 것을 단서로 정씨를 추적해 붙잡았다. 정씨는 태광그룹뿐 아니라 한화그룹과 롯데그룹 창업주들의 조상 묘를 도굴하다가 붙잡힌 전력이 있었다. 그는 지난 1999년 3월 공범 한 명과 함께 울산시 울주군의 롯데 신격호 회장의 선친 묘를 도굴하고 8억원을 요구하다 붙잡혀 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2003년 성탄절 특사로 출소한 정씨는 이듬해인 2004년 10월, 공범 3명과 함께 충남 공주시에 있는 한화 김승연 회장의 조부 묘를 도굴해 금품을 요구하려다가 붙잡혔다. 그는 한화그룹 회장 비서실에 전화해 돈을 요구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정씨는 포항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지난 4월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정확한 자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