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민 기자

9월 초 시작된 증시 상승장에서 외면받았던 IT(정보기술) 업종의 주가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기대에 못 미치는 3분기 실적으로 한때 73만원 선까지 떨어졌던 삼성전자 주가는 최근 사흘 연속 상승세로 5% 가까이 올라 77만원 선을 회복했다. 하이닉스는 지난 22일 1.89% 상승하며 지난 7월 이후 석달여 만에 처음으로 2만4000원 선을 탈환했고, LG디스플레이는 부진한 3분기 실적을 발표한 다음날인 22일 오히려 5% 가까이 급등했다. 이런 IT대표주들의 선전에 힘입어 코스피 전기·전자업종 지수는 지난주 2.56% 상승해 모처럼 코스피 지수(-0.23%)를 크게 웃돌았다.

IT업종이 그동안 부진했던 이유는 글로벌 수요 감소와 공급 증가로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 등 대표적인 IT 제품의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투자심리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IT업종 주가가 반등 기미를 보이자 이제 바닥을 찍고 본격적인 반등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런 기대대로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20%가량을 차지하는 IT업종이 힘을 낸다면 1900선 안팎에서 등락을 거듭 중인 증시도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IT업종의 반등이 유동성 장세에서 '반짝 상승'에 불과한 데다 시장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해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제품가격 하락세 바닥 다가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락했던 반도체와 LCD 가격은 2009년 이후 글로벌 경기 회복 덕분에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2008년 말 0.6달러 선이던 DDR2 1Gb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올해 3월 말 3.14달러까지 치솟았고, 22인치 컴퓨터용 LCD모니터는 2009년 1월 88달러에서 올해 4월 104달러까지 18%나 뛰었다. 이러한 호황 덕분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주요 IT 기업들이 올해 2분기까지 사상 최대의 실적으로 신바람을 냈고, 주가도 덩달아 오름세를 탔다.

그러다 4월쯤부터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미국의 경기회복이 더뎌지고 유럽의 재정위기가 불거지면서 글로벌 수요는 크게 위축된 데 반해 기업들은 공급을 계속 늘리면서 재고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자연히 오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들의 주력 반도체 제품인 DDR3 1Gb D램의 가격은 최근 한 달 새 최대 18% 하락했고, 32Gb 낸드플래시 가격은 13% 떨어졌다. 19인치 컴퓨터 모니터용, 32인치 TV용 LCD 패널 가격은 두 달 새 각각 17%, 12% 하락했다. 기업들은 최대한 원가를 절감하는 방법으로 가격하락에 맞서고 있지만, 3분기 이후 하락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이마저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다. 특히 LCD는 글로벌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고 마진폭이 적어 타격이 더 컸다. LCD를 주력품목으로 하는 LG디스플레이는 3분기 영업이익이 1825억원에 그쳐 2분기(7260억원)에 비해 4분의 1토막 났다.

결국 IT업종 부활의 관건은 반도체와 LCD의 가격 하락세가 언제쯤 멈추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등 선진국의 '크리스마스 특수'와 중국의 수요 증가 여부가 큰 변수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중국을 돌아보고 온 남대종 SK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LCD TV 판매가 기대 이상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고, PC소비도 기대치를 충족한 것을 확인했다"며 투자 우선순위를 디스플레이〉반도체〉전기전자 부품 순으로 꼽았다. 김동원 현대증권 연구원은 "제조업체들의 감산(減産)으로 LCD 가격 하락세가 10월 들어 크게 둔화됐다"며 "디스플레이 업황이 4분기에 바닥을 치고 내년 1분기부터는 개선될 것으로 보여 지금 미리 주식을 매수하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반짝 상승했을 뿐…바닥 아직 남았다"

그러나 IT업종의 최근 상승세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코스피지수가 1900선에 도달한 이후 주식시장에서는 기존 주도주(株)였던 자동차와 화학주가 너무 많이 올랐다는 부담감 때문에 코스닥 중소형주 등 그동안 덜 오른 종목들로 활발하게 손바꿈이 일어나고 있다. IT주가 잠시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뿐 대세를 뒤집을 만한 힘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환율이 상승세(원화가치 하락)로 돌아서거나 선진국 경기가 호전되는 정도의 뚜렷한 계기가 있지 않은 한 IT업종의 최근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IT업종에 대해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와 LCD 가격의 하락세가 4분기를 넘어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서원석 NH증권 연구원은 "LCD 가격은 바닥 근처까지 갔지만, 반도체는 이제야 본격적인 하락이 시작된 것이어서 가격 하락세가 내년 1분기까지 갈 수 있다"며, 공급과잉으로 인해 현재 1.8달러 선으로 내려앉은 D램(DDR2 1Gb 기준) 가격이 1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성인 키움증권 상무는 "그래도 꾸준히 흑자를 내는 반도체는 LCD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LG디스플레이는 이미 9월부터 적자로 전환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가격이 12월쯤 바닥을 치더라도 업황이 워낙 안 좋아 언제 흑자로 돌아설 수 있을지 예상할 수가 없다"며 "이 업종을 14년 동안 지켜봤는데 지금처럼 심각한 상황은 처음 봤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