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g의 원료로 수천L의 석유와 맞먹는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고, 핵분열을 이용하는 원자력에 비해 폐기물도 거의 없다. 특히 발전의 원료가 되는 중수소·삼중수소는 인류가 700만년 이상 사용 가능한 양이 있다. 미래의 녹색에너지원으로 불리는 핵융합 발전 이야기이다.

핵융합 발전은 수소 원자를 서로 부딪혀 에너지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바로 태양의 에너지 생성원리다. 국제 사회는 화석연료 고갈에 대비해 총 16조원대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사업을 지난 2006년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3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 '초전도핵융합실험장치(KSTAR)'가 2007년 완공됐다.

대전 국가핵융합연구소에 있는 핵융합장치 ‘초전도핵융합실험장치(KSTAR)’. 가로·세로 각각 9m인 원통형의 KSTAR는 수소 원자를 충돌시켜 에너지를 생산하는 장치다.

하지만 핵융합 발전의 성공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무엇보다 충분한 정도의 발전량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핵융합이 이뤄져야 하는데 핵융합의 근간이 되는 '플라스마(plasma)'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KSTAR에서 섭씨 2000만도의 플라스마와 핵융합을 수초간 안정적으로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KSTAR는 특히 구리가 아닌 초전도체(전류가 흐를 때 저항이 없는 물질)를 사용해 플라스마를 생성, 기술면에서 다른 나라를 앞서고 있다. ITER도 KSTAR의 초전도체를 채택할 정도.

초전도체 방식으로 KSTAR 정도의 핵융합장치를 유지하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한국의 이번 연구성과는 인공태양의 실현을 위한 또 하나의 디딤돌로 평가받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플라스마

원자력발전소는 우라늄의 핵분열로 에너지를 만든다. 반면 태양에서는 수소와 같은 가벼운 원자핵들이 합쳐져 무거운 헬륨 원자핵으로 바뀌면서 부산물로 중성자를 쏟아낸다. 이렇게 생성된 중성자의 운동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 핵융합 발전이다.

핵융합이 일어나려면 섭씨 1000만 도가 넘는 상상할 수 없는 고온 상태가 유지돼야한다. 이 상태에서는 고온으로 데워진 원자핵에서 전자가 떨어져 나와 전기를 띤 이온, 전자들이 몰려 있다. 이를 플라스마라고 부른다.

1000만 도가 넘는 고온이다 보니 핵융합 장치에서 만들어진 플라스마의 전자, 이온들이 제멋대로 튄다. 마치 뜨거운 용광로 안의 화염이 벌건 불꽃을 날름거리며 이리저리 요동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플라스마가 제멋대로 움직이다가 자칫 핵융합 장치에 손상을 가할 수 있다. 제멋대로 튀는 플라스마를 제어해 특정 공간에 가둬둘 수 있느냐가 핵융합 발전의 관건이다. 국가핵융합연구소 연구진은 플라스마를 제어하기 위해, KSTAR 내부에 플라스마 상태를 외부로 알려주는 60여종의 진단 장치를 심었다. 레이저, 마이크로파(波) 등을 플라스마에 발사, 반사되거나 통과되는 양을 측정하면 플라스마가 정상 상태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플라스마가 비정상적으로 공간을 벗어날 조짐이 보이면, 컴퓨터가 이를 파악해 플라스마의 세기를 줄이거나 위치를 보정한다. 플라스마를 제어하는 일련의 과정은 100만 분의 1초에서 1만 분의 1초 사이에서 이뤄진다.

국가핵융합연구소 권면 박사는 지난 11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융합에너지 콘퍼런스'에서 "KSTAR로 섭씨 2000만 도에서 6초간 안정적으로 플라스마를 운영하는 데 성공했다"며 "향후 2022년까지 KSTAR 상용 발전의 분기점인 섭씨 3억 도의 플라스마를 300초간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핵융합의 증거, 중성자 검출

핵융합 발전이 이뤄졌다면 부산물인 중성자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 이번 KSTAR 실험에서 중성자가 검출됐다. KSTAR에서 실제로 핵융합이 일어났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김용균 교수는 "이번 KSTAR 실험에서, 핵융합 반응에 의해 2.45MeV(메가전자볼트·1MeV는 100만eV)급 에너지를 가진 중성자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2.45MeV는 1.5V짜리 건전지를 160만여 개 이어야 얻을 수 있는 에너지. 김 교수는 "초전도체를 사용한 핵융합 장치에서 중성자를 검출한 실험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ITER가 KSTAR와 같은 초전도 방식으로 핵융합을 실시할 계획이어서, 이번 연구 성공으로 인류가 핵융합 발전으로 전기를 얻을 가능성이 보다 커졌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우리와 같은 초전도체 방식의 핵융합장치로는 중국 허베이에 있는 EAST가 있다. EAST는 플라스마 유지 시간이 60초에 달했다. 하지만 중성자가 검출됐는지는 불분명하다. 국가핵융합연구소 김웅태 박사는 "EAST는 우리보다 2년 빨리 시작했기에 플라스마 안정 시간이 현재로서는 길지만, 우리가 보다 우수한 초전도체 물질을 사용해 향후 발전 속도에서는 우리가 나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