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 상장하는 외국 기업이 늘고 있다. 지난 8월 말 기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총 15업체가 상장돼 있다. 중국 업체가 13곳, 일본 업체 1곳, 미국 업체 1곳 등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국가의 기업이 상장할 예정이다. 9월 말 기준, 국내 상장을 위해 한국 증권사와 주관사 계약을 체결한 외국기업은 총 74개사. 중국 기업이 47개사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일본과 중국이 각각 10개사로 그 뒤를 이었고 베트남, 필리핀, 태국, 영국, 라오스, 호주, 뉴질랜드 등도 있어 기업의 국적이 다변화되는 추세다.

몇 군데 기업은 곧 공모가 진행되거나 상장이 임박했다. 일본의 오피스24는 지난 9월 말 거래소에 상장예심청구서를 접수했고, 라오스의 코라오홀딩스는 지난 1일 상장 승인을 받았다.

◆ 외국기업 상장과 함께 금의환향하는 한상(韓商)들

그런데 최근 국내 증시에 상장하는 이들 기업을 잘 살펴보면 회사 설립자가 한국인이거나 교포 출신인 한상기업이 여럿이다. 미국 기업으로 코스닥에 상장한 뉴프라이드 코퍼레이션의 CEO는 에드워드 김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세대로 아메리칸 드림에 성공한 케이스다. 일본 네프로아이티의 경우엔 CEO인 가나이 다케시가 재일교포 3세이며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성융광전은 이규성 CEO가 중국에 진출해 회사를 일군 경우다. 지난 1일 상장 승인받은 라오스의 코라오홀딩스 오세영 CEO 역시 20년 만에 코라오그룹을 라오스 대표기업으로 키웠다. 그 외 중국의 코웰이홀딩스, GSMT 등도 한상기업이다. 외국 기업 상장을 추진하는 A 증권사 관계자는 "한상기업의 경우, 성공해서 고국에 돌아온다는 '금의환향'의 의미로 상장을 추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한상은 '흔쾌히', 일반 외국기업은 '머뭇머뭇'

일각에서는 외국기업 상장이 늘어나 국내 증시가 글로벌화되는 점은 반갑지만, 상장 외국기업이 지나치게 한상기업에 쏠린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하고 있다. 물론 거래소 측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일축한다. 거래소 관계자는 "상장을 추진할 때 해당 업체가 한상기업인지의 여부는 신경 쓰지 않는다"며 "중요한 것은 기업이 쌓아온 실적과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반 외국기업이 국내 증시에 진출하려는 의지가 크지 않다는 점은 인정했다.

일반 외국기업 상장을 추진하는 B 증권사 관계자는 "상장을 위한 절차를 밟아왔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해당 기업의 CEO가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며 "한국 증시에 진출했을 때의 장단점을 매우 신중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의 주가가 예상보다 시원치 않은 점도 우려요인이다.

각국 증시에 외국기업 상장 붐이 일면서 독일이나 홍콩, 싱가포르 등 증시가 한국의 경쟁 상대로 떠오른 점도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상장 절차 도중 상장을 포기하거나 상장 승인을 받고도 철회하는 업체도 발생했다. A 증권사 관계자는 "거래소 측에서는 최근 상장과 관련해 일부 외국기업이 문제를 일으키자, 상장을 진행 중인 기업 관계자를 불러 상장 의지를 재차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한상기업은 국내 상장에 대한 의지가 확고해 믿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한국 증시도 하나의 상품이다

그렇다면 한상기업과 달리 일반 외국기업이 한국 증시에 흔쾌히 진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수의 외국기업 상장을 추진 중인 B 증권사 관계자는 "상장유치 경쟁이 글로벌 규모로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외국기업이 한국 증시에 올 만한 매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예전에는 거래소 차원에서 외국기업이 한국 증시에 진출케 하기 위한 유인책을 마련했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사라지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입을 모았다. B 증권사 관계자는 "상장 승인까지 걸리는 시간을 홍콩,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 증시보다 단축해주거나 상장 진입턱을 낮추는 등의 원래 유인책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거래소 측에서는 상장 승인 기준을 대폭 올리기까지 했다. 가장 큰 계기는 중국 기업인 연합과기다. 연합과기가 상장하고나서 얼마 되지 않아 감사의견 거절을 받자, 국내 투자자들은 상장 외국기업에 대한 신뢰를 크게 잃었다. 연합과기가 퇴출위기를 넘기고 재상장되긴 했지만, 그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B 증권사 관계자는 "상장할 수 있는 외국기업의 순이익 기준은 20억원 수준이지만 최근 거래소에서는 그 이상의 실적을 요구하고 있어 상장 추진에 제약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만의 특색도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다양한 업종의 기업을 들여오는 것도 좋지만, 주력산업을 지정한 다음 집중적으로 관련 시장을 키우는 등 한국 증시만의 고유색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금융당국에서는 "상장 확대로 국내 증시의 규모를 확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연합과기와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며 "외국기업을 상장할 때 회계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