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한국경제는 강한 면모를 보였다. 주요 제조업과 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려 각국 정부와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처한 경쟁환경을 분석하면 지금까지의 성공방정식에 도취해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본지는 삼성경제연구소와 함께 7개 산업 분야를 진단, 10년·20년 후 한국경제의 내일을 좌우할 새로운 성공전략을 모색해 본다.

지난 8월22일 중국 다롄(大連)의 중위안촨우(中遠船務) 조선소.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장궈바오(張國寶) 차관을 비롯한 중앙·지방정부의 고위 관료, 회사 관계자 등 2000여명이 모여 '대련개척자호' 건조 착수 기념식을 가졌다. 어느 나라에서건 선박 명명식(命名式)이나 진수식(進水式)을 거창하게 하는 경우는 있어도 건조 착수를 기념하는 행사는 극히 드물다.

중국은 왜 '대련개척자호' 건조에 고위 관료까지 나서서 흥분할까. 이튿날 중국 주요 언론 매체가 일제히 보도한 기사의 제목에 그 답이 나와 있다. '중위안촨우, 한국의 농단(壟斷)을 깨부수다.'

대련개척자호 건조는 세계 조선업계에서 '한중 역전(韓中 逆轉)'을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다. 이 선박이 조선업계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다는 '드릴십(drillship·해양 시추선)'이기 때문이다. 드릴십은 한국이 2000년 이후 올 상반기까지 전 세계에서 발주된 47척을 전량 수주한 분야다. 한국 조선은 지난해 상반기 이후 선박 수주잔량·총수주량·건조량 등 조선 3대 지표에서 차례차례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드릴십·LNG선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에서는 중국의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선 1위국'임을 자위(自慰)해왔다. '대련개척자호'는 한국 조선의 그런 불안한 입지를 한방에 걷어차 버린 것이다.

미래의 성장동력이라고 할 태양광산업은 어떤가. 도이치뱅크가 평가한 세계 7대 태양광업체 리스트가 있다. 놀랍게도 2·4·5·7위가 중국 업체다. 한국 업체는 없다. 중국은 세계 태양광시장의 50%를 좌우한다. 게다가 한국이 줄기세포 등으로 저력을 보인 생명공학(바이오 산업)은 일본이 선점한지 오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조선일보와 공동으로 진행한 '한중일 3국의 산업 경쟁 분석'을 통해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수십 년 동안 통용되어 왔던 한국 제조업의 성공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2차대전 이후 후발 산업국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조선·메모리 반도체·LCD·TV·휴대폰·자동차산업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선진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거나 '글로벌 강자'로 부상한 국가다. 어떻게 성공했을까. 반도체·조선·LCD·TV에서 우리에게 1위를 내준 일본이 분석한 '한국의 성공방정식'이 있다. 일본의 학자와 언론, 정부가 분석한 결론은 ▲불황기에 과감한 투자 ▲신속한 의사결정 ▲신흥·개도국 시장(Volume Zone)에 대한 적극적인 공략이다.

실제로 세계 반도체산업의 극심한 불황기였던 1987년 이후 삼성전자는 4년 연속 연평균 3억9600만달러를 투자했다. 일본 4대 반도체회사 투자액을 합친 것보다 2.8배나 많았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업의 장기불황이 시작되던 1970년대 중반 세계 최대규모인 100만DWT급(재화중량톤수) 조선소를 준공하며 조선업에 진출했다. LCD와 자동차산업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한국 기업이 불황기에 선제적으로 '올인식' 투자를 하니, 다른 나라 기업은 생산과잉을 우려해 추가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런 투자를 반복하면서 한국 기업은 세계시장 장악력을 강화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복득규 연구전문위원은 "이런 성공방정식이 최근엔 중국 때문에 효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고를 무기로 삼은 막대한 투자력, 13억명의 인구를 배경으로 한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은 한국이 얼마를 투자하든 눈도 깜짝 않고 더 엄청난 규모로 투자하고 있다.

중국은 자본투자 부문에서 1992년 한국을 추월하더니, 2006년에는 일본마저 추월했다. 연구개발(R&D) 투자에서도 2001년 한국을 추월했고, 전문 R&D 인력은 한국의 7배(190만명)를 투입하고 있다. 이런 투자의 힘으로 중국은 전통산업 분야인 철강·중공업·조선·가전 분야에서 한국을 바짝 추격하거나 이미 추월했다.

미래의 승부를 가를 신(新)산업 분야는 어떨까. '그린'과 '바이오'로 대표되는 신산업 분야에서 중국은 한국을 따돌리고 한참 앞에서 질주하고 있다. 중국이 지난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입한 돈은 346억 달러(약 38조6300억원)다. 2위인 미국의 2배나 된다. 최근엔 202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780조원을 쏟아붓겠다는 계획까지 마련했다. 우리는 꿈도 못 꿀 액수다. 지난해 OECD가 분석한 신재생에너지와 제약 분야 10대 기술강국 리스트에 한국은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중국은 각각 7위와 9위에 이름을 올렸다. 미래의 승부에서 우리는 이미 중국에 뒤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현재 추세라면 '아날로그(일본)→디지털(한국)→그린(중국)'으로 산업의 주도권이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