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아파트의 정경. ㅁ자 구조로 설계돼 아파트 한 가운데가 뚫려있다.

대표적인 '부촌'으로 꼽히는 도곡동 타워팰리스는 40년 후에도 그 명성을 이어갈까. 40년 전 지어져 수명을 다한 아파트를 보면 그 미래를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대문 아파트, 낙원 아파트, 회현 시범 아파트…. 모두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의 타워팰리스처럼 1970년대에는 연예인이나 국회의원 등 부자가 사는 집으로 주목받던 아파트다. 소위 '잘 나가던' 이 아파트,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연예인이 많이 살아 '연예인 아파트'라는 별칭까지 붙은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 아파트. 지상 7층에 30㎡(약 9평)가 채 안 되는 131가구가 들어선 이곳은 1965년 완공 당시 고급아파트로 주목받았다. 지금도 드문 'ㅁ'자 중정형 구조로 설계돼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 여전히 건축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연구대상'으로 꼽힌다.

하지만 부자들이 살던 과거와 달리 이곳에는 지금 재개발을 기다리는 영세민들이 살고 있다. 재개발 소식에 가격이 뛰어 매매가는 2억원 안팎. 하지만 매매 거래는 멈춘 상태다. 전세는 최고 5000만원, 월세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 30만원 선. 지난 1993년 위험시설물 C등급을 받을 정도로 곳곳에 균열이 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이곳에 머물러 있다. 인근 공인중개소에 따르면 131가구가 아직 떠나지 못한 상태다.

동대문 아파트의 난간과 난간 사이에는 긴 빨랫줄이 걸려있었다. 재건축 소식에도 주민들은 아직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 15일 오후 이곳에선 주민들이 분주하게 일상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60~70대 할머니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중정에서는 빨래를 너는 주민들이 서로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난간과 난간 사이에는 채 마르지 않은 빨래가 널려 있었다. 뉴타운으로 지정돼 철거를 기다리던 이곳은 서울시가 올해 초 리모델링을 해 예술인 창작·전시 공간으로 활용키로 했다. 노후아파트를 철거하지 않고 '재활용'하는 경우는 이곳이 첫 사례다.

남산이 한눈에 보이는 회현 제2시범아파트는 서울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남은 시민 아파트다. 박정희 정부 때 판자촌에 사는 주민을 이주시키기 위해 대규모로 지은 시민아파트 중 하나로, 1970년에 세워졌다. 'ㄷ'모양의 지상 1~10층 건물 1개 동에 38.34㎡(11.6평) 352가구가 들어섰다. 당시 시민아파트였던 와우아파트가 붕괴해, 어떤 경우에도 무너지지 않는 '시범'을 보여주라고 '시범아파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회현 시범아파트.

정부의 취지와 달리 입주금이 비싸 당시에는 연예인 등 부자들이 주로 살았다.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 가수 윤수일, 은방울 자매 등이 거주했다. 규모는 작지만, 방 두 개에 개별 화장실, 중앙난방 시스템 등을 갖춰 당시에는 최신식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남산 경사지를 이용해 1층과 6층에 각각 출입구가 있다는 것.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고층에 사는 주민이 편리하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다. 구멍가게 등 상가도 1층과 6층 출입구에 집중해 들어섰다. 이곳은 지난 2004년 위험시설 D등급으로 분류돼, 2006년에 철거가 결정됐다. 하지만 주민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아 계속 보류되고 있는 상황.

현재 매매가는 2억5000만원 안팎이고, 전세는 3500만원, 월세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 35만원 선이다. 최근에는 영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추격자 등 주로 스릴러물의 촬영지로 주목받았다.

회현 시범아파트의 복도. 대낮이지만 컴컴하고 미로처럼 끝이 보이지 않아, 스릴러물 영화에서 자주 등장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상가 중 하나인 낙원상가는 1965년 준공, 국내에서 '주상복합아파트'를 선도한 곳이기도 하다. '낙원삘딍'이 정식명칭인 이곳은 1~5층은 상가, 6~15층은 아파트다.

악기 상점이 많아 예술인들이 자주 찾는 공간으로 유명해, 2007년부터 서울시가 대규모 상가로 조성하기 위해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주변은 '다문화 거리'로 지정해 도로를 인도로 바꾸고, 포장마차를 '노점판매대'로 입주시킨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낙원상가 상인들은 "경쟁이 더 치열해진다"며 반대하고 있다. 올 3월에는 14층에 화재가 발생해 새삼 주목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