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에 사는 자영업자 A씨는 지난해 우연히 은행에서 통장정리를 해보곤 화들짝 놀랐다. 보험에 가입한 기억조차 없는데, 보험사에서 넉달 동안 30만원씩 총 120만원을 '보험료' 명목으로 뽑아갔기 때문이다. A씨는 보험사에 즉각 항의했고, 평소 알고 지내던 보험설계사가 자신의 정보를 이용해 화재보험에 임의로 가입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B씨는 지난해 암(癌)보험 신상품이 나왔다며 가입을 권유하는 마케팅 전화를 받았다. 이미 3년 전에 해당 보험사의 암보험 상품에 가입했던 B씨는 "생각해 보겠다"라고만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최근 B씨는 해당 보험사 상품을 무려 3개나 가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험료도 자동이체로 한 달에 20만원씩 1년이나 빠져나간 상태였다.

남의 명의를 훔쳐서 몰래 보험에 가입시키는 이른바 '도둑보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공계약' 혹은 '작성계약'으로도 불린다. 경기침체 여파로 영업이 힘들어진 일부 보험설계사와 텔레마케터들이 계약 건수를 늘리기 위해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 보험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미 다른 보험에 가입 중인 계약자의 정보를 빼낸 다음에, 새 보험에 몰래 가입시키는 것이 대표적인 수법. 통장에서 보험료가 빠져나가도록 자동이체까지 대신 신청하기도 한다.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제삼자 명의를 훔치고 서명을 위조하고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는 것은 엄연한 범죄 행위"라며 "보험사들은 관리를 소홀히 한 계약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게 아니라 소비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관리 통제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약자 동의 없는 도둑보험 증가

최근 도둑보험의 유혹에 흔들리는 보험설계사들이 급증하는 까닭은, 바로 선(先)지급 수수료 체계 때문이다. 일단 계약을 따내기만 하면 수당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다 보니 '묻지마식 계약' 체결에 목매게 되는 것이다.

대다수 도둑보험 피해자들은 명의도용 사실 자체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지내기 쉽다. 설계사들이 보험료를 대신 내는 경우가 많아서다. 하지만 요즘은 자동이체가 일반화되어 있다는 점을 악용해 몰래 보험료 자동이체까지 연결해놓는 경우도 심심찮게 빈발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펀드나 적금 이체인가 보다'고 생각하면서 보험료가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도 눈치 채지 못한다.

통장에서 보험료가 빠져나가지 않아 금전적 피해는 입지 않았으니 별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손의료보험의 경우, 1인당 가입할 수 있는 보험금 한도가 정해져 있다. 만약 보험설계사가 나 몰래 최대한도까지 미리 가입해놨다면, 정작 나는 나중에 내게 꼭 필요한 보험은 들지 못하고 거절당하는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혹시 나도 도둑보험 피해자?

도둑보험으로 인한 피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통장을 꺼내 혹시 나도 모르는 자동이체가 있는 건 아닌지, 정체불명의 돈이 매달 빠져나가는 건 아닌지 수시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엔 현재 내가 어떤 보험에 가입 중인지 확인해보도록 하자. 지금까진 본인이 가입하고 있는 보험 내역을 조회하려면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에 본인이 직접 방문해야 해서 상당히 불편했다.

그러나 지난 7월부터 각 협회 홈페이지(www.klia.or.kr, www.knia.or.kr)에서 보험 가입 내역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가입 중인 보험 계약을 비롯해 해약환급금이나 만기환급금이 존재하는 과거 계약과 효력이 상실된 실효계약 등까지 모두 알 수 있다. 이때 은행·증권사 등에서 발급받은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며, 조회 결과를 알려면 신청 후 1주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 물론 공인인증서가 없거나 인터넷 사용이 어렵다면 종전처럼 협회에 직접 본인이 신분증을 들고 찾아가서 조회하면 된다. 비용은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