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빚까지 6억원 제 전부를 걸었는데…. 죽음이라는 것밖에는 답이 없어 보이네요. 많은 사람에게 짐이 될 듯합니다. 여러분, 증권가 쓰레기들과 도박판을 허용해주는 정부, 쓰레기 언론에 돈을 바치지 마십시오. 간곡히 부탁하며 제 삶의 마지막 글을 적어봅니다."

"저도 다 날렸습니다. 집 팔고 월세 삽니다. 제가 갈 수 없는 이유는 자식들입니다. 제가 벌여놓은 엄청난 부채를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습니다. 마음은 죽고 싶으나 겉으론 웃으며 삽니다. 그렇게라도 가족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님 함께 살아가요."

지난 23일과 24일 밤 한 인터넷 포털 증권종목 게시판에 '자살 기도'를 암시하는 글과 이를 만류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들은 코스닥 기업인 '네오세미테크' 투자자들이다. 다음 달 3일이면 상장이 폐지되는 네오세미테크는 25일부터 일주일간 '정리매매'가 시작됐다. 일종의 '땡처리' 거래다.

1주당 8500원 하던 주가는 25일 하루 96.5%가 폭락했고 26일엔 다시 35%가 빠졌다. 190원. 다음 달부턴 이 거래마저 중단돼 주식은 휴짓조각이 된다.

불과 10개월 전 정부와 증권가에서 '유망 녹색기업'으로 칭송받던 네오세미테크. 왜 이렇게 됐을까.

네오세미테크는 작년 10월 6일 우회상장(비상장사가 상장회사를 인수, 유가증권시장이나 코스닥시장에 회사를 등록시키는 것)한 기업이다. 코스닥 기업인 모노솔라를 인수한 네오세미테크는 상장 당시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태양광 및 반도체 발광다이오드(LED) 등 현 정부 역점사업인 녹색성장 산업의 선두주자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네오세미테크는 2008년 말 산업은행으로부터 '글로벌 스타 인증기업'으로 채택됐고, 작년 말엔 이 회사 제품이 정부(지식경제부)로부터 '2009 차세대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됐다.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이 회사 공장에는 '녹색산업 현장'을 방문하려는 국회의원과 은행장 등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증권사와 매스컴도 네오세미테크 띄우기를 거들었다. 한 증권사는 작년 11월 '저평가된 태양광 및 LED테마주'라며 네오세미테크에 대한 리포트와 함께 '매수' 의견을 제시했고, 다른 증권사들도 녹색성장 수혜주로 네오세미테크를 거론했다. 증권전문 케이블TV는 '유망주'라고 매수를 부추겼고 이 회사 대표 오명환씨도 언론에 자주 등장해 회사 미래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을 내놨었다. 오씨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2011년 매출은 적게 잡아도 1조원은 된다. 절대 허풍이 아니다"는 말도 했다.

이에 맞춰 회사측은 대만이나 중국 기업에 태양광 재료나 반도체 LED 등 대규모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투자자들이 몰렸고 이 회사 주가는 작년 말 한때 1만7900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2월 회사측이 공개한 지난해 실적도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매출액은 561% 증가한 1453억원이었고, 순이익은 1800% 늘어난 24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힌 것. 증권사 관계자는 "당시 누가 보더라도 '네오세미테크'는 잘나가는 유망기업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몰락'은 빠르게 다가왔다. 회사측이 지난 3월 24일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감사인(대주회계법인)으로부터 분식회계 의혹 등으로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것이다. 지난해 실적의 경우 회사측은 246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고 발표했으나 감사 결과는 그 반대인 223억원 순손실로 나타났고 매출액도 1453억원에서 979억원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네오세미테크는 감사의견 거절로 한국거래소에서 상장폐지를 통보받았고 3월 25일부터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시가총액 4083억원으로 코스닥 기업 가운데 27위 규모의 기업이었다. 당시 증권가 일부에선 "설마 네오세미테크가 상장폐지될 정도로 부실할까" 하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회사측과 투자자들은 상장폐지에 반대하며 한국거래소에 이의신청을 제기했고 회계법인에 재감사를 요청했다. 거래소는 3개월간 개선기간을 주고 상장폐지를 유예해줬고 회계법인이 재감사에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재감사 결과 지난해 적자 규모는 '-223억원'에서 '-837억원'으로 크게 확대됐고 자본잠식률도 91%에 이른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 금감원과 회계법인 등에 따르면, 네오세미테크의 각종 재무제표는 조작됐고 매출을 입증할 증빙서류가 없으며 일부 수출 거래는 특수관계인과 짜고 만든 '가짜 거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검찰은 사퇴한 오명환 전 대표가 회사 자금 거액을 횡령하고 분식회계를 한 혐의를 잡고 네오세미테크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수사에 나섰다.

작년 말 현재 네오세미테크 소액주주는 7287명. 이들이 보유한 주식은 3022만주로 전체 주식의 63%가량 된다. 소액주주들은 25일 정리매매 첫날 주가로 환산해도 1인당 평균 3000만원 이상씩 손해를 봤다. 이 중 소액주주 3000여명은 지난 4월 '네오세미테크 주주연대'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한국거래소와 회계법인·증권사·언론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껍데기만 남은 기업을 초우량 기업으로 둔갑시킨 네오세미테크 경영진 ▲이런 기업이 아무런 제재 없이 우회상장까지 하게 한 금융당국과 회계법인 ▲부실 기업을 유망 기업으로 포장해 투자를 권유한 증권사 ▲국가가 역점 추진하는 사업의 '대표기업' 이라며 투자자를 안심시켜준 정부가 모두 한통속이 돼 주식 사기극을 벌인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