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賣買)'의 사전적 의미는 '물건을 팔고 사는 일'이다. 똑 같은 뜻으로 일본에서도 ?買(ばいばい·바이바이)라고 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賣買라고 하지 않고, 買賣(마이마이)로 쓴다.
팔고(賣) 사는(買) 것이 아니라, 사고(買) 난 다음에 판다(賣)는 뜻이다. '買賣'에는, 내가 필요한 물건을 먼저 산 다음에 상대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팔겠다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중국인의 사고(思考)가 배어 있다.
이러한 중국인의 실용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단어는 또 있다. 우리는 생활의 기본 3요소를 얘기할 때 '의식주(衣食住)'라고 표현한다. 중국에서는 어떨까.
중국인은 일반적으로 '食衣住'라고 쓴다. 겉치레인 옷(衣)이나 집(住)보다는 먹는 것(食)을 더 중시하는 생활습관이 나타난다(食爲天). 겉보다는 실속, 바깥보다는 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가진 중국이 미국 국채(treasury)를 본격적으로 내다 팔고 있다. 미국과의 신경전 차원이라고 규정하기에는 규모가 크다.
6월말 현재 중국의 미 국채 보유잔고는 8437억 달러.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 9월에 그 규모가 9383억 달러에 달했음을 감안하면 9개월만에 무려 1000억 달러 가까이 줄어 들었다.
특히 지난 5~6월 2개월 동안 중국이 팔아치운 미국채(treasury)의 규모는 565억 달러다. 지난해 말 이후 매각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중국의 '미국 국채 던지기'는 무엇 때문일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달러 올인'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글로벌 위기 이후 달러의 위상이 많이 약화돼 향후 평가손실이 커질 것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금융권의 외환, 주식, 채권딜러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스톱 로스(stop loss·손절매)'라는 말이 있다. 더 큰 손실이 예상될 때 미련을 갖지 않고, 손실을 확정짓는 매도거래를 할 때 이를 일컫는 말이다. 당장 손실을 보기는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더 큰 손실을 줄이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경우에도 이런 실리를 좇는 전술로 보인다. 미 국채의 매도가 달러화 약세를 가속시키고, 이에 따라 환손실(환율의 변화에 따른 손실)이 커지겠지만 향후 더 큰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인 것이다. 대미 엄포의 간접적 효과도 고려했을 것이다.
최근 중국이 보이는 또 하나의 뚜렷한 행보는 위안화의 국제화 추진이다. 위안화를 달러화, 유로화, 엔화에 버금가는 국제통화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위안화를 기축통화(基軸通貨)로 만들기 위한 야심을 드러낼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미국채 던지기의 셈법은 더욱 선명해진다.
기축통화국은 외환위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만큼 유동성 우려도 없다. 아무리 많이 찍어내더라도 세계적으로 통화가치를 인정받는, 시뇨리지(seigniorage, 화폐주조차익) 때문에 가능하다.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면, 중국은 수익성이 높지 않은 미국 국채를 지금처럼 다량 보유할 필요가 없게 된다.
지난해 3월 중국은 전인대(국회)에서 위안화의 국제화를 공식화했다. 이후 7월 시범적으로 위안화 무역 결제를 도입했다. 상하이, 광저우, 선전, 주하이, 둥관 등 5개 도시에 소재한 기업들이 홍콩 및 아세안 국가들과 무역할 때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
처음엔 미미했던 위안화 무역 결제는 홍콩이 적극적으로 위안화를 받아들이면서 급증하고 있다. 올 5월에는 무역 결제 해외 대상지역 제한을 아예 폐지해 버렸다.
최근에는 홍콩에서 위안화 펀드(mini QFII)를 허용하고, 외국인이 자유롭게 중국내에서 위안화 투자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특유의 만만디(慢慢的) 전술이 무서울 정도로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체면이나 자존심은 보통 실리(實利)와 상충한다. 그러나 힘을 가지고 있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체면을 살리면서 실리를 챙기는 것이 가능하다. 최근 중국의 행보를 보면 그런 자신감이 느껴진다.
미국에 대해서 자존심은 지키면서 실리를 챙겨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이 미국채를 팔지 못하도록 종용해 왔다. 환율조작국 지정을 놓고 줄다리기를 한 것도 그것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안중에 없다는 눈치다.
중국의 미국채 매도는 벌써 미국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중국의 이런 행보가 지속되면, 미국은 언젠가는 달러화 하락, 금리 상승의 파고(波高)와 맞서야 한다.
위안화의 기축통화화. 물론 지금 당장은 어림없다. 달러 패권의 장막 뒤에 도사린 미국의 정치·군사적 패권과의 대결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더블딥(double dip·경기의 일시적 상승후 재침체) 위기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또 다른 복병을 만났다. 미국의 대응이 궁금하다.
◆박용하는?
산은경제연구소 경제조사팀장. 연구소 내 국제경제팀장을 거쳐 구미(歐美) 경제파트를 이끌었다. 한때 국내 일간지에서 경제부·국제부 기자로 다양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에선 국제금융부, 국제업무부, 외화자금부, 자금거래실, 런던지점 등에서 근무하며 국제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와 고려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KAIST 금융공학과정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