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대기업과 재벌의 책임을 잇달아 거론하자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5일 "요즘 청와대에는 '우리가 정권 내내 친(親)기업 기조로 얼마나 잘해줬는데도 대기업들은 하나도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것이 없다'는 분위기가 있다"며 "대통령은 요즘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활동과 성장을 막고 있는 것은 없는지에 대해 속된 말로 '꽂혀 있다'고 할 정도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대기업의 사회적 기여" 발언을 시작으로, 지난주에는 "대기업 CEO의 어려운 계층에 대한 관심", "재벌 금융사의 폭리" 등을 잇달아 언급했다. 청와대에서는 그 배경을 짐작케 하는 몇 가지 사례와 대통령 발언이 회자되고 있다.
지난 13일 이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녹색 기업 육성 지원대책 보고대회'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이에 앞서 청와대에서 사전 검토회의가 있었는데, 실무자들은 당초 삼성과 LG그룹의 대표적 녹색 투자 기업 두 군데를 중소기업 두 곳과 함께 모범 사례로 들고 이들에 대한 '격려 방안'도 포함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청와대가 삼성○○○, LG○○○ 같은 기업 키워주려고 '녹색성장' 추진하는 줄 아느냐"며 "대기업은 빼고, 행사에도 대기업 CEO들 대신 중소기업 대표들을 포함시키라"고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정 총리도 "대기업이 신성장동력산업인 녹색성장 분야까지 독식하면 안 된다"며 "대기업이 중소기업 시장까지 잠식하는가 하면 청년실업 해결에도 큰 도움이 안 되는 등 기업의 양극화가 심각한 문제"라고 건의했고 대통령도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뒤 실제로 해당 대기업 관련 내용이 보고서에서 빠졌고 CEO 초청도 취소됐다.
이 대통령은 공무원들이 대기업 지원 방안 같은 내용을 보고하면 "당신들 공무원 생활하다가 나와서 삼성이나 포스코 같은 대기업에 가서 자리 잡으려고 (대기업 신경 써주는) 사람들이 솔직히 있는 거 아닌가"라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침해하는 것은 없는지 똑바로 살피라"는 말도 한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경제·기업 업무를 담당하는 관계자들은 "교육뿐 아니라 산업에서도 '개천의 용(龍)' 같은 회사들이 많아야 한다" "재벌은 가만둬도 잘하니까 정부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된다" "정보화혁명 시대에 미국에서는 MS나 애플 같은 기업이 나왔는데 우리는 여전히 삼성·현대·LG밖에 없다. 녹색혁명 때는 스타기업이 나와야 한다" "중소기업에도 (대기업으로의 성장을 돕는) '사다리'가 필요하다"는 등의 말을 대통령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에는 대기업과 관련된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포퓰리즘'이라는 반발이 나오는 데 대한 우려도 있다. 이 대통령은 이 때문인지 25일 김희정 대변인을 통해 "대기업을 쥐어짜자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 하라는 얘기"라며 "대기업의 현금 보유량이 많은데 투자를 안 하니 서민이 더 힘들어진다. 대기업 투자를 막는 환경으로 무엇이 있는지도 점검하는 게 좋겠다"는 지시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