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분야와 신약, 스마트 카(smart car)·그린 카(green car) 기술에 연구개발(R&D) 예산을 집중 투자하겠다."

4조4000억원의 국가 R&D 예산을 주무르는 황창규 지식경제부 R&D(연구개발)기획단장이 R&D 예산 운용의 구체적 집행 계획을 밝혔다. 이는 정부의 R&D 예산에 크게 의존하는 중소·벤처 기업뿐 아니라, 관련 업계에 미치는 파급력도 만만찮다. 정부가 이 분야의 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육성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황 단장은 "유가 급등과 지구 온난화, 인구 고령화 등이 산업에 새로운 변곡점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대체 에너지와 그린 산업, 바이오·헬스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궁극적으로 모든 국가 R&D는 인간 중심의 과학과 기술, 인간 중심의 제품 개발 정신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며 "기술을 위한 기술 개발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 단장은 15일 조선일보와 조선경제i가 함께 만드는 온라인 경제미디어 '조선비즈닷컴(chosunbiz.com)' 출범 기념으로 서울 강남구 한국기술센터 사무실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15일 오전 서울 역삼동 한국기술센터 8층 사무실에서 황창규 R&D전략기획단장이 한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 개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취임한 지 3개월 정도 지났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는 평가가 많다.
"재미있다. 하지만 책임감도 강하게 느끼고 있다. 국가의 미래 먹을거리를 찾는 일이고, 국가 R&D 체계를 혁신하는 일이다. 이 일에 대한 열정도 있고, 관심도 많다. 해볼 만한 일이라고 느낀다. 나는 삼성에 연구원으로 들어가서 CTO(최고기술책임자)로 나왔다. 평생 내가 해온 일이 R&D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새로운 시장을 바꾸고,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모두 R&D이다. 1년간 삼성에 상담역으로 있으면서 미국에 2~3개월 머물고, 싱가포르 등을 돌아보면서 급변하는 현장을 직접 봤다. 국가의 R&D 전략을 짜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취임 때 세계 산업이 변곡점을 맞고 있다고 했다. 어떤 전환을 말하는 건가?
"기술의 변곡점, 산업의 변곡점이 우리 앞에 있다. 그런데 그걸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18세기 증기기관 발명되면서 방직과 철강 산업이 급격히 발전했다. 19세기에는 가솔린 엔진으로 조선과 자동차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40년대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이후에는 컴퓨터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PC 산업이 대세가 됐다. 하지만 이건 모두 '테크놀러지 푸시(technology push·기술 주도형)' 모델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산업이 탄생했다. 여러 업체가 제품을 만들지만, 사실 차이가 크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변곡점을 봤다. PC를 통해 정지화면이 아니라 동영상을 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메모리 반도체의 성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간파했다. 당시에는 기업들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고 싶어도 구조적으로 핵심 부품의 기술 개발 속도에 맞춰서 제품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는 이른바 '마켓 풀(market pull·시장 견인형)' 모델을 고민했다. 포스트 PC(PC 이후) 시대는 모바일(mobile) 시대가 될 것으로 봤고, 스피드 보다 용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2002년 '메모리 신성장론'(이른바 황의 법칙-메모리 반도체의 용량이 1년에 두 배씩 증가한다는 것)을 발표했다. 시장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진 것이다. 시장과 수요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기술개발이 뒤따르니까, 애플 같은 창조적 기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메모리 신성장론'은 이처럼 '마켓 풀' 모델을 지향하고 있으며,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변곡점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R&D와 시장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기술을 위한 기술이었다. 상품으로 나오지 못하고 사장된 기술도 많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해왔고, 또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은 R&D가 한계를 넘어서도록 하는 것이다. 재료와 공정, 전략의 혁신을 통해 한계를 넘어서는 혁신적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R&D가 고객의 욕구와 감성을 담아내야 한다.
단순히 미래의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는 것을 한 단계 더 뛰어넘어야 한다. 원천 기술을 융합해 기존의 기술을 무너뜨릴 파괴적 기술(destructive technology)로 시장을 끌어갈 것이다."

―많은 사람이 융합이 미래의 기술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전략기획단이 생각하는 융합의 구체적 그림은 무엇인가?
"융복합을 어설프게 하면 단순한 결합이다. 자칫하면 우리가 기대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만 생길 수 있다. 사람과 조직, 문화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리고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융합되어야만 진정한 융복합이다."

―전략기획단은 4조원이 넘는 R&D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 가운데 집중적으로 지원할 분야는 어디인가?
"몇 가지를 검토 중이다. 우선 바이오와 헬스, 메디컬이 융합된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는 맞춤형 질병 치료와 신약 개발이 필요하다. 이 분야가 매력적이고 시장도 크다. 여기에 우리가 강점을 가진 IT를 접목하면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7~8년 전에 DNA 칩 개발을 한 적이 있다. 칩에 혈액이나 타액을 묻히며 어떤 병에 취약한지 바로 알 수 있고, 의사는 환자에게 어떤 질병 인자가 있는지 고려해 맞춤형 치료를 할 수 있다. 반도체 칩과 생산 과정이 비슷하고, 거기에 혈액과 타액에 반응하는 물질만 넣으면 된다. 이미 미국의 몇몇 기업들이 이런 칩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이미 반도체에서 세계 1위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도 강점이 있다.
신약(新藥) 시장도 눈여겨보고 있다. 지금 있는 신약은 대부분 합성 신약(합성 화학물질로 만든 신약)이다. DNA나 세포, 천연물질을 이용한 신약개발을 하면, 지금보다 근본적인 질병 치료가 가능하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신약의 경우, 제품 하나의 매출이 10조원 이상인데, 합성 신약이다. 하지만 천연물질 신약은 부작용이 적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천연물질 신약과 관련해 이미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세계에서 TKM(Traditional Korean Medicine)이라 불리는 한의학(韓醫學)이 있다. 동의보감처럼 체질을 감안해서 처방하는 의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현대 과학의 기술을 거기에 본격적으로 접목시키지 못했다. 현대 기술과 잘 융합하면 훨씬 좋은 신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오·헬스 이외에 집중적으로 또 예산을 지원할 분야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자동차 분야가 될 것이다. 미래 자동차는 스마트카, 그린카이다. 스마트카는 정보와 편리함, 그린카는 에너지와 환경 기술을 담아내는 것이다. 고효율 전기차나 연료전지 자동차는 기존 자동차 기술을 뒤엎는 혁신적 기술이 될 것이고,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다. 그런데 아직은 관심이 적고, 또 분야별로 개발을 하다 보니 교류가 부족하다. 지난주에 일본을 다녀왔는데,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매우 활발하다. 또 일본은 국제 표준이 되기 위한 노력도 아주 열심히 한다. 우리는 이 미래 자동차 기술을 빨리 개발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최적의 계획을 세울 것이다."

―우리나라도 미래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아닌가?
"아직은 투자가 미약하고, 기술개발도 더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위험감수)을 해서 과감하게 투자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하다. 우리 기획단은 전략을 가지고, 국가 차원에서 최적의 R&D 메타 플랜(meta plan·거대한 기초 계획)을 세울 것이다. 메타 플랜이 있어야, 그 다음에 각개 전략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각개 전략만 있고, 아이폰처럼 외부의 충격이 있을 때만 대응하는 것 같다."

―이런 분야를 세계적 기술로 키울 구체적 전술도 있는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개방적 혁신)이 필요하다. 일본은 지금 미국 뉴멕시코 주에 4년간 30억엔을 투자해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분야 공동 실증연구를 추진 중이다.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국제 표준을 선도하고, 글로벌 시장을 직접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R&D도 국내에 머무르지 말고, 미국이나 일본 등 앞서 있는 국가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