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약 ㅎㅈ"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채권시장 참여자들의 사설메신저(현재 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야후 메신저이다)에는 이런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점약'이야 점심약속의 준말로 일반 사람들도 많이 쓰는 표현이지만 'ㅎㅈ'은 무엇일까?

◆ 채권시장, 그들만의 리그

우리나라의 자본시장 중 주식시장은 보통 1000조 시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주식시장 보다 더 큰 시장, 국내 자본시장의 가장 큰 시장이 바로 1200조 시장인 채권시장이다.

주식시장의 참여자가 1000원 미만의 코스닥 종목부터 80만원이 넘는 삼성전자 주식까지 자신의 능력하에서는 누구나 주식을 매매할 수 있는데 반해 채권의 경우, 채권거래의 주요 종목인 국고채와 통안채가 100억원 단위로 거래가 되기 때문에 이를 거래할 수 있는 대상은 소위 말하는 기관투자가(은행, 보험사, 투자운용사, 증권사, 연기금, 외국인)가 될 수 밖에 없다.

채권시장의 참여자들은 따라서 주식시장에 비해 극히 작은 수일 수 밖에 없고, 실제 채권시장의 참여자들은 약 1000여명인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참여자도 적고 진입장벽도 높은 그들만의 리그인 채권시장엔 그래서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한다.

◆ '확정'은 체결을, '동통'은 동시통화를 의미

채권시장 장외 호가방의 일부분을 들여다보자.

'10-1 51+ 100', '10-1 50-', '통당 855-', '통당 86 사자 동통', '10-1 50+ ㅎㅈ' '10-1 확정'

여기서 말하는 '10-1'이란 현재 국고채5년 지표물인 '국고0450-1503'종목(2015년 3월 10일 만기, 표면이율 4.5%)을 말한다. 2010년에 첫번째(1번)로 발행됐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는데, 종목명을 다 부르기가 번거롭기 때문에 이렇게 줄여서 표현한다.

'통당'이란 '통안채 당월 발행물의 줄임말로 통안채2년물 중 가장 최근에 발행된 것을 일컫는다. 따라서 '통당'에 해당하는 통안채는 2개월동안 '통당'으로 불리며 2개월 후엔 '구통당'으로 이름이 바뀐다. 현재의 '통당'종목은 통안0368-1206종목(2012년 6월 2일 만기, 표면이율 3.68%)을 말한다.

'51'은 금리를 얘기한다. 국고5년물 금리는 4.50~4.51%에 호가가 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첫 숫자인 '4'자리는 모든 시장참여자들이 알고 있기에 생략하고 뒤에 것만 부르는 것이다. 예를들어, 국고3년 지표물(10-2)을 '96 +(매수) 혹은 -(매도)'라고 하면 앞에 '3'이 생략된채 3.96%를 의미하는 것이다.

'+'는 매수를 '-'는 매도를 의미한다. 이 역시 거래의 편의성을 위해 시장참여자들의 암묵적인 합의로 '매수'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 것이다. 국고채 지표물을 제외한 비지표물이나 기타 다른 채권(국민주택채, 은행채, 회사채 등)은 '사자'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일반적 거래의 기본이 100억원이기 때문에 거래금액을 표시하지 않기도 하지만 때로는 '100'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고 특정한 금액을 지정할 때는 꼭 숫자를 붙인다. 예를들어 통당채권을 300억원을 사겠다는 표시는 '통당 86+ 300'이 되는 것이다.

조합해보면, '10-1 50+ 200'은 국고채 5년 지표물 국고0450-1503종목을 4.50%에 200억원 매수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통'은 또 뭘까? '동시통화'의 줄임말로 바로 거래를 하기에는 호가가 변동할 가능성이 높은 호가(매수자나 매도자가 마음이 바뀔 가능성이 높은 호가)이므로 서로 전화기를 들고 통화하면서 거래를 하자는 의미다.

'ㅎㅈ'은 '확정'의 초성만을 따 더 줄인 말로 체결을 할 때 쓰는 매우 중요한 단어다. 채권시장의 거래가 시스템화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려면 결국 시장참여자들이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주식시장에서 매수나 매도 주문의 마지막 버튼 같은 최후의 결정이 필요하고, 그 역할을 '확정'이란 단어가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한 번 '확정'을 말하거나 혹은 메신저나 호가방 어디에도 이런 단어를 쓰면 설사 중개인이나 운용역이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돌이킬 수가 없다. 채권거래의 기본금액이 100억원이란 것을 감안한다면 '확정'이란 단어가 채권시장에서 얼마나 무거운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증권업계의 누군가가 '확정'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면 그는 아마 채권시장에서 일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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