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F(Korea IT Fund)에 대한 벤처캐피탈 업계의 애정은 남다릅니다. 설립된 2002년부터 벤처캐피탈 시장의 주요 모태펀드(Fund of Funds)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KIF는 SK텔레콤·KT·LG텔레콤 등 통신사업자가 지난 2002년 통신요금 인하 요구가 한창일 때 '수익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출자해 설립한 펀드입니다. IT산업 발전을 위해 관련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목적으로 세워졌습니다. 3000억원 규모의 재원으로 출자사업을 벌였습니다. 2003년부터 3년동안 매년 1000억원 규모의 출자가 이뤄졌습니다. 투자금은 벤처캐피탈을 통해 우수 벤처기업에 공급됐고 이 돈을 받은 업체 중 일부는 우량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위상은 수치로 증명됩니다. 2003년 조성된 벤처캐피탈 펀드 결성총액 4550억원 중 KIF의 돈이 1370억원입니다. 3분의 1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2004년 총 결성액 5247억원엔 KIF 자금 1210억원이 포함돼 있습니다. 2005년에도 1430억원을 출자했습니다. 25%에 달하는 묵직한 비중입니다. IT버블이 꺼지면서 벤처캐피탈 업계가 펀드 조성에 어려움을 겪을 때 때 모태펀드 기능을 톡톡히 한 셈입니다.

정보통신 분야만 보면 무게감은 더 큽니다. 2003년 하반기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정보통신 분야에 투자된 1조4019억원의 벤처캐피탈 투자금 중 KIF의 투자금액이 3230억원에 이릅니다. 2008년 11월 현재 전체 누적 펀드 수 324개 중 21개의 KIF에서 투자한 비중이 4분의 1에 달합니다. 아주IB투자, 동양창업투자, 스틱인베스트먼트 등 업계의 주요 운용사들이 KIF의 돈을 받아 펀드를 만들어 투자했습니다.

KIF는 지난해 명(命)을 다할뻔했습니다. 통신사업자들이 출자금을 되찾아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3000억원이 넘는 주요 모태펀드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벤처캐피탈 업계는 "국내 IT산업의 발전을 위해 펀드를 해산 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언론도 이들을 지지했습니다. 결국 통신사업자들이 펀드에 낸 돈을 되찾아가려는 계획은 무산됐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은 KIF는 최근 4년 만에 출자사업을 재개했습니다. 규모도 2000억원으로 제법 컸습니다. 10곳의 운용사에 200억원씩을 출자하기로 했습니다. 벤처캐피탈 업계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43개 회사가 출자사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아주IB투자, 네오플럭스, IMM인베스트먼트, 프리미어벤처파트너스, 엠벤처투자, 튜브인베스트먼트, 스톤브릿지캐피탈, 캡스톤파트너스, 미래에셋벤처투자, MVP창업투자 등 10개사가 이달 초 운용사로 최종 선정됐습니다.

그런데 선정 결과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애초 KIF가 출자사업 과정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과 심사 결과가 다르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탈락한 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KIF측이 '그동안의 KIF 조합 운용 실적이 좋을 경우 우선 출자를 약속하겠다'고 말해 지원했지만 탈락했다"고 털어놨습니다. KIF는 운용사를 선정하기 전 이전 KIF 펀드 수익률이 좋았던 벤처캐피탈에 별도로 연락해 '출자사업에 지원하면 출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벤처캐피탈 실무자도 "애초 KIF는 10개 운용사 중 5곳은 그동안의 실적이 좋았던 회사로 채우고 다른 5개 운용사의 경우 신규 운용사에 기회를 주겠다고 말해왔다"며 "하지만 선정 결과를 보니 실적이 좋았던 회사들이 대거 탈락하고 신규 운용사들에 대한 출자비중이 높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이번 출자사업 땐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한 투자제안서 없이 회사이름·인력소개 등의 기본적인 정보만 담은 투자의향서(LOI) 한장만을 요구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최종 심사 직후 운용사 선정 결과를 발표했던 관행과는 달리 이번엔 결과 발표에 며칠동안 뜸을 들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KIF측은 사실상 공적자금 관리기관에 가깝기 때문에 운용사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동안 KIF는 20여개의 항목에 이르는 철저한 계량평가를 통해 운용사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유명했습니다. 업계 주요 벤처캐피탈 한 곳은 계량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두 번이나 출자 사업에서 탈락하기도 했습니다. KIF가 운용사를 선정하면 업계가 전반적으로 수긍했기 때문에 이번 운용사 선정후 나타난 시장 반응은 이례적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한 벤처캐피탈 고위 관계자는 "KIF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시장에선 이번 KIF의 운용사 선정에 대해 의아해하는 게 사실"이라며 "KIF가 업계의 중장기적인 모태펀드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 출자때부터라도 시장의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