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가격 담합을 척결하겠다는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의 의지는 지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조사 영역을 더 넓혀, "시장경제에서 암(癌) 같은 존재인 담합을 뿌리 뽑겠다"는 입장이다. 학자(성균관대 법학과 교수) 출신인 정 위원장은 작년 7월 취임 이후 서민 생활과 밀접한 생필품 제조업체들에 대한 담합 행위를 많이 조사했다. 재계의 거센 반발에도 사상 최대인 6689억원의 과징금을 LPG업계에 부과했고, 소주·라면 업체들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조사를 했다. 앞으로는 담합 조사 대상을 전자·강철 등 공산품과 공산품 자재·부품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실제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생필품보다는) 주요 원자재나 공산품 부품 가격 담합이 훨씬 크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또 계열사에 물량을 몰아주는 등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를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는 부당행위도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했다. 공정위가 혼탁한 시장 질서를 잡고 진입규제를 없애야 유망한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대기업으로 성장하고 한국 경제가 투명해지고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담합조사는 결국 우리나라 기업을 더 강하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7일 인터뷰 내내 심각한 표정으로 공정위의 정책 방향을 얘기했다. 웃거나 미소를 띤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때로는 주먹을 쥐기도 하면서 담합 적발, 시장 진입장벽 해소, 대기업 내부 부당거래 적발 등 앞으로 공정위가 집중할 주요 정책에 대해“시장 원리에 충실한 법 집행”이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정위원장은 조선일보와 조선경제i가 함께 만드는 경제·투자 전문 온라인 매체인 조선비즈닷컴(chosunbiz.com) 출범을 기념해 지난 17일 서울 반포동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집무실에서 약 1시간 30분간 인터뷰를 했다.

―공정위는 그간 생필품 가격 담합 조사를 중점적으로 해왔다. 재계 일각에선 "반(反)기업적이다"는 불만도 나왔다. 글로벌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공정위가 심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앞으로도 담합 조사를 계속할 것인가.

"이제까지 담합을 조사한 품목은 LPG·소주·라면 등 민생과 관련된 품목들이었다. 하지만 생필품 이외에도 강철 등 자재 가격도 점검하고 있고, 전자제품 등 주요 공산품도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자재·부품 등에서 가격 담합이 일어나면 소비자가 사용하는 완성품의 가격도 높아지기 때문에 신경을 쓰고 있다."

―담합에 가담한 임직원에 대한 형사 고발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담합 척결 의지가 더 강해진 것 같다. 서민층과 관련이 깊은 품목이나 대기업을 집중 조사하는 것에 대해 '친서민포퓰리즘'이라는 시각도 있다.

"담합은 시장 경제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인 경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선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과징금은 기업에 금전적 부담을 주지만 담합에 직접 참여하는 개인에겐 억제 효과가 미치지 못한다. 담합에 가담한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뤄질 때 보다 강력한 담합 억제가 가능하다고 본다. 미국·영국 등도 담합에 참여한 개인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다. 포퓰리즘 정책은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산을 사용하는 것이다. 서민 생활과 관련되는 LPG 등의 품목에 대해 조사를 벌였던 건, 예산을 확보해서 대중에게 뿌리는 포퓰리즘 정책은 아니다. 담합을 하는 독점기업들은 초과 이윤을 얻기 위해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시장 경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담합을 없애는 게 기본이다. 담합을 조사해서 적발하는 것은 원론에 충실한 법 집행을 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담합에 대한 제재가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선진국이 아니라, 성장단계 나라의 기업엔 자칫 싹을 자르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지 않나.

"담합은 경쟁 사업자가 많은 곳에선 어렵다. 과점시장에서 주로 일어난다. 이런 시장에서 담합을 없애면 기술 혁신을 하는 사업자들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 그 결과 경쟁이 일어나면 경쟁력을 잃은 사업자들은 도태된다. 이처럼 담합 조사는 시장원리에 충실한 것이다. 오히려 일부 대기업들의 카르텔(담합)이 한국 경제의 성장과 새로운 유망 기업의 탄생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기업 집단 내부의 부당거래도 조사하고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사례를 말해달라.

"특정 보험사에 대해 계열사들이 퇴직연금을 몰아준다고 해서 국회에서 문제가 됐고, 그런 이상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 있다. 다만 부당 내부거래는 우리나라만 불공정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다른 나라엔 이런 제도가 없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례 조사를 통해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부당 지원에 대한 위법성 판단기준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때도 대기업들의 계열사 물량 몰아주기가 많았다. 이번 대기업 부당 내부거래 조사는 어느 정도 진행됐나.

"지난 3~4월 대기업집단 계열사 간의 상품·용역 거래 현황을 제출받아서 분석 중이다. 분석 결과에 따라서 물량 몰아주기로 보이는 부분은 추가 조사할 계획이다. 이때 퇴직연금 운영실태 등도 점검할 계획이다. 다만 부당 지원행위는 시장의 자율 감시가 더 중요하다."

―일부 업종에서 대기업들이 장벽을 쌓아서 새 기업들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막는 것도 한국 경제의 체질과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동안 진입 장벽을 많이 허물었으나, 아직 장벽이 남은 곳이 보건복지(의료)와 금융·유통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수준이거나 인구가 5000만명 되는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보건·금융·유통이 국민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이는 진입 장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부분에서 잔존하는 진입 장벽을 제거해야 시장에 새로운 자본과 신기술을 유치해 국부를 창출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올 하반기와 내년에도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겠다."

―도요타 리콜사태를 봐도 결국 부품이 문제였다. 공정위 차원의 부품업체 경쟁력 강화 방안이 있나.

"공정위는 대기업과 협력업체 사이, 또 1차 협력사와 2차 협력사 간 상생협력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우리가 관심 갖는 부분은 대기업들이 협력사의 기술이나 영업비밀을 탈취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 대기업이 협력사가 개발한 기술이나 아이템과 관련해서 기업들의 거래 기회를 봉쇄하거나 기술을 탈취하는 건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