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뒤 임기 내내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국민임대주택 100만호 공급사업’이 옛 대한주택공사(현 LH공사)의 부채를 20조원 가량 늘려놓은 것으로 분석됐다. 옛 주택공사의 부채는 토지공사와 합병돼 LH공사가 될 당시 64조원대 수준이었다. 옛 주공 부채의 3분의 1이 임대주택사업에서 발생된 것이다.

더구나 임대주택부문에서는 사업이 본격화된 지난 2003년 이후 6년 연속 영업손실을 봤다. 저가 공급이라는 정책 목표에 함몰돼 임대료를 너무 낮게 책정했고, 수요 책정을 잘못해 상당수의 미분양이 일어난 탓이다. 그래서 빚을 대규모로 내서 사업을 벌였는데 수익이 전혀 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임대주택 부문에서 발생한 부채가 LH공사 자체 수익으로는 상환이 어려운 ‘악성부채’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대규모 자금 투여 후 손실만 나는 ‘밑 빠진 독’

17일 본지가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출자사업평가’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옛 주공이 임대주택 사업을 위해 채권발행과 금융권 차입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19조146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임대주택 100만호 건설이라는 전 정부의 공약사업을 집행하느라 20조원 가량 빚을 진 것이다. 이는 같은 기간 주공의 부채 증가액(47조2000억원)의 절반에 조금 못미치는 수준이다.

임대주택사업에서 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난 이유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사업규모를 늘렸지만, 수익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옛 주공의 임대주택사업 규모는 지난 2003년 4조9000억원 가량에서 작년말 25조원 이상으로 커졌다. 6년 사이에 20조원 가량이 이 사업에 투입된 것이다.

반면, 임대주택사업에서 나오는 수익은 전혀 없었으며, 연평균 900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해 7년동안 6000억원 이상의 누적 손실을 봤다. 이같이 손실이 발생한 데에는 원가에도 못미치는 부실한 이익 구조가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실제로 예산정책처는 임대주택사업 부문의 원가율이 109~150% 사이인 것으로 분석했다. 원가율이 100%를 넘어섰다는 것은 주택 임대료가 너무 낮아서 아파트 임대를 통해 얻는 수익이 아파트 건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영업 수익이 나지 않은 사업을 정부의 주요 정책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리하게 빚을 져서 진행했던 것이다.

정부는 이같은 점을 고려해 재정으로 매년 8000억원에서 1조원씩 유상증자를 했다. 약 5조원 이상의 재정이 투입됐지만 계속 확대되는 임대주택 사업 규모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옛 주공의 재무구조는 ‘밑 빠진 독’ 처럼 악화됐다는 것이 예산정책처의 분석이다.

◆부실한 수요예측으로 미분양 속출

상황이 이같이 전개된 데에는 치밀한 수요 예측 없이 사업을 벌인 것이 가장 주된 요인으로 제시됐다.

국민임대주택 사업을 대상으로 한 2008년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국민임대주택은 소득수준이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70%(210만원) 이하인 무주택 세대 중 입주의사와 임대료 지불 능력 등을 감안해 수요 예측이 이뤄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이 계층의 주택 소유 여부를 감안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지역 내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를 모두 수요층으로 집계했다.

나중에 감사원이 당시 수유 예측결과를 점검한 결과 2003년 최초 계획을 수립했을 당시 수요 층으로 설정했던 33만4400가구 중 14만1510가구는 이미 주택을 한 채 이상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필요 이상의 수요를 잡아 비용이 더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당수의 국민임대주택단지가 임대 수요가 많은 서울 등 도심지역이 아니라 서울 외곽과 지방에 택지가 조성된 사례도 있었다. ‘임대주택 100만호 공급’이라는 물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요가 없는 지방 등에 임대 아파트를 지은 경우도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면 경기도 포천과 전북 순창 등지에서 각 290세대 가량의 임대주택이 세워졌지만, 입주율(2007년 3월 기준)이 2.6%와 4.2%에 불과했다. 수요 없는 곳에 아파트를 짓다 보니 미분양이 발생하고, 재무구조가 악화됐다는 것이 감사원의 판단이다.

◆임대주택 부채 20조원, ‘악성부채’ 될 가능성

지난해 말 현재 LH공사의 부채는 109조 2428억원이다. 우리나라 공기업 부채(213조2000억원)의 절반 정도 규모다. 우리나라 공기업 부채 문제는 사실상 LH공사 부채가 앞으로 어떻게 상환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셈이다.

LH공사측은 이같은 우려에 대해서 “혁신 도시 사업이 제 궤도에 오르게 돼서 입주 기관으로부터 토지와 아파트 분양대금을 받게 되면 채무 상환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세종시 수정안 논란 등으로 혁신도시 사업의 향배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라, 혁신도시 사업수익을 통해 누적된 부채를 줄일 수 있다는 공사측 주장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부채 상환 논란에도 불구하고 LH공사는 집값 안정을 위해 수도권 외곽지대에 ‘보금자리 주택’를 대규모로 공급하고 있다. 국민임대주택사업과 같이 재무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사업이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금자리 주택도 임대주택 처럼 분양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면 LH공사의 재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혁신도시 사업을 통해 이익을 내서 임대주택 사업의 부채를 줄일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렇게 될 지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지금은 최근 3년동안 혁신도시나 임대주택 사업을 하면서 급속하게 확대된 사업규모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했다.